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사도행전 4장 19-22절『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에이다멘)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πλειόνων τεσσεράκοντα) 되었더라』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을 하는데, 누구 말을 듣는 것이 옳은지 판단해 보라는 것이다. 에이다멘은 눈으로 본 것 같이 호 로고스를 알게 된 것을 의미한다. 들은 것도 베드로나 요한이 호 로고스로부터 들은 것이다. 호 로고스는 말씀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심령 속에서 임재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에 대해서 증언하므로 싫어하여 그들을 잡아 가두었다. 부활에 대한 말씀을 듣고 믿은 자가 남자만 오천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도행전 4장 5-7절에서『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엔 포이야 뒤나메이)와 누구의 이름으로(엔 포이오 오노마티) 이 일을 행하였느냐』라고 물었다.


사도행전 4장 8-9절에서『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이를 헬라어 성경을 직역하면,

Τότε Πέτρος πλησθεὶς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εἶπεν πρὸς αὐτούς· ἄρχοντες τοῦ λαοῦ καὶ πρεσβύτεροι,εἰ ἡμεῖς σήμερον ἀνακρινόμεθα ἐπὶ εὐεργεσίᾳ ἀνθρώπου ἀσθενοῦς ἐν τίνι οὗτος σέσωται,


『그때 베드로가 성령 충만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이스라엘 장로들아 만일 그 병든 사람에게 행한 선한 사역에 대하여 그가 어떻게 온전하게 되었느냐 하는 일로 우리가 이 날 심문을 받는다면』성령이 충만하다 라는 말은 베드로가 말을 하지만, 호 로고스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도행전 4장 11-12절『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알로스)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헤테로스)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건축자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의미한다. 집은 성전을 의미하며, 머릿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오직 구원은 호 로고스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알로(ἄλλῳ)는 약간 다른 것을 의미하는데, 유대교 안에서 다른 이름을 의미하고, 헤테론(ἕτερον)는 완전히 다른 것을 의미하는데, 다른 종교에서는 그와 같은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4장 14-17절『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그노스톤) 표적(세메이온)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에피 토 오노마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노스톤 세메이온(γνωστὸν σημεῖον)은 잘 알려진 표적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나타난 표적, 즉 하나님이 하시는 표적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노스톤 세메이온을 번역할 때는 권능의 표적으로 수정되는 것이 필요하다. 에피(~위에서) 토(호 로고스) 오노마티(이름) (ἐπὶ τῷ ὀνόματι)는 호 로고스에 대한 이름 위에서 라는 의미다. 토는 특정한 것을 말하는 정관사다. 바리새인들도 베드로가 예수라는 이름 위에서 말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이름 위에서 라는 말로 표현했다.


나면서부터 못걷게 된 사람에 대해서 사도행전 3장 6-8절에서『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죄를 사해주고 병을 치료하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병을 치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면적으로는 부활생명을 주어서, 죽었던 영을 살려내는 것을 의미한다.


유대인들과 병이 나은 자는 하나님의 권능의 표적을 깨달았으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깨닫지 못했다. 권능을 깨달은 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그렇지 못하고 영적인 눈이 닫혀있는 자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πλειόνων τεσσεράκοντα) 되었더라』헬라어 성경은 사십세가 넘었더라 라고 되어 있다. 플레이오논(πλειόνων)은 영어로 more than이다. 사십이라는 말은 출애굽한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사십년간 헤메다가 다 죽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해 일어서지 못하는 영적으로 죽은 자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백성들이 정탐꾼을 보내게 해 달라고 모세에게 요구하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 그런데, 열두 정탐꾼이 돌아와서 하는 말이 『들어가면 우리는 다 죽는다』라는 것이다. 가나안에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 같다라는 말로 말한 것이다. 성경은 이에 모든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하며 울었다고 한다. 열두 정탐꾼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의 육의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영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세상을 바라보면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약 이백만명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믿은 자가 단 두명이었다는 말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표적은 마치 사십년간 광야에서 헤메다가 죽은 자가 예수의 이름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는 부활생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부활생명은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하늘의 생명을 얻어서 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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