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사도행전 11장 22-26절『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엔
토 퀴리오) 머물러 있으라(프로스메네인)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아가도스) 사람(아네르)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이 소문은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는 소문이다. 주로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자,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내어 이방 전도를 하라는 것이다.
엔 토 퀴리(τῷ κυρίῳ)는 주 안에서 라는 말이다. 프로스메네인(προσμένειν)는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 안에 오래 머물러 있으라는 것이다. 아가도스(ἀνὴρ ἀγαθὸς)는 하나님의 가치있는 일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의 가치있는 일을 하는 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듣고 그 분과 말씀을 나누는 정도의 상황을 의미한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가 뿌리를 내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복음을 가르쳤고, 호 로고스 복음
안에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다소에서 칩거하던 바울을 친히 찾아가 동역자로 삼았다.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호칭을
붙인 것은 바나바와 사울과 공동체의 일원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불러준 것이다. 복음을 받아들인 안디옥 공동체가 바나바와 바울의 깊은 섬김과 말씀지도를 통해 또 다른 삶, 밀알의 삶을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나바와 바울이 몸소 보여준
한 알 밀알의 삶이 공동체의 모범이 되었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칭찬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을 꿈꾸는 안디옥 공동체는 이후, 이방선교의 중심축을
이루는 공동체로 자라났다.
사도행전 11장 27-28절『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인 선지자들이다. 에베소서 4장 11절을
보면 선지자를 세우신 것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았다고 한다. 이들은 호 로고스의 사역자들이다. 사도는 오늘날 교회의 총회장격이다. 선지자는 예언하는 사람들이며, 복음 전하는 자는 부흥사역을 하는 자들,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 목사는 교회에서 목양하는 자들이다.
오늘날과 차이가 있는 것은 부흥사역하는
자들과 선지자가 없는 것이다. 부흥사역은 목사가 겸임하는데, 부흥사역을
전문으로 하는 경우가 없고, 다만 교회 공동체의 부흥 사역에 있어서 목사들 중에서 경력을 참고하여 부흥사역
강사로 초청받아서 설교를 하는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 부흥사역은 사도와 제자들을
중심으로 행해졌으므로, 호 로고스의 말씀을 대로 전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그 상황을 그대로 목격했던 증인들이었기 때문에 복음을 전파하는데, 큰 효과를 나타내었다. 그러나 오늘날 부흥사역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증거라기 보다, 성령 충만에 초점을 맞춘다.
성령충만을 강조하다보니, 부흥사역에 있어서 성령을 받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부르짖음과 기도가 함께 모여, 웅장한 모습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성령충만 해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성령 충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에 대해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고, 오직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서 이루려는 자에게 성령충만이 주어진다. 성령
충만은 성령 세례를 받지 않은 자에게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은 자만 성령 충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예언하는 선지자가 여러 명
있었다. 안디옥교회의 부흥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방문한 선지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헬라인과 유대인의
구분 없이 하나로 어우러진 참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고 하나님께 깊은 감사와 찬양을 올렸다. 그런데
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은 천하에 닥칠 대 흉년 앞에 서게 된 것이다.
대흉년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세상적으로 말을 하자면, 식량이 부족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하나님 말씀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글라우디오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 인해서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 온 유다로 이동하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이방 땅 안디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나아가 로마에서도 유대인들을 추방하기
시작한 것이다. 황량한 땅으로 도피생활하거나 이동하여 복음을
전한 것이다.
그리고 유대에 있는 교회 공동체에는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와 복음과 율법을 혼합시키기 시작했다. 따라서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 지도자들은 사울과 바나바를 통하여
참된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파송하기에 이른 것이다.
사도행전
11장 29-30절『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에우포레오)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디아코니안)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에우포레오는 금전상의 능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디아코니안은 도움, 봉사,
관리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체적으로는 금전상의 도움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개역개정의 부조라는 의미는 축의금과 부의금이라는 의미를 갖는데, 여기서는
상호부조라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있어서 물질적 어려움을 겪는 영적 형제들에게
서로의 삶을 나누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복음의
말씀이 왜곡될 때, 제자들을 통해서 참된 복음을 확산을 시키는 모습이다.
사도행전 2장 44절『또 재산(휘파르케이스)과 소유(크테미타)를 팔아(에파프라스콘) 각(안) 사람(티스)의 필요(크레이안)를 따라(카도티) (파신) 나눠 주며(디에메리존)』표면적으로는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필요한 형제에게 나눠주는 것이지만, 영적인 의미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에 대한
의미를 전하는 것이다.
휘파르케이스는 존재, 재산을 의미하며, 크테미타는 재물, 소유이지만, 물질에 대한 소욕을 의미한다. 에파프라스콘은 거래하다, 노예를 처분하다 라는 의미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속량임을 나타낸다. 티스는 관계대명사(who)이며, 크레이안은 결핍, 카도티는 ~만큼 이라는 관계부사(as)이다. 파신은 번역이 되지 않았는데, 만유(예수 그리스도)라는
의미다. 디에메리존은 나누어주다, 채워주다 라는 의미다. 결국 죄를 처분하는 것이다. 육적 종교심과 소욕에 대한 죄를 처분하게
되면, 각 사람의 영적인 필요만큼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워주신다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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