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사도행전 19장 13-14절『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바울이 행하는 능력은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는 것이지 바울 개인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능력을 행할 때는 심령 속에서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명령한 것이다. 그들은 심령 속의 호 로고스를 모르기 때문에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사도행전 19장 15-16절에서『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아무나 이런 일을 하면 오히려 악귀에게 당하게 된다. 오늘날에도 심령 속의 호 로고스가 명령 하지 않는데도 사역자들이 스스로 이런 일을 행하려는 자들이 있다.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나타나는 것이다.
누가복음 11장 14-16절에서『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예수님이 벙어리 귀신을 쫒아내었더니 사람들이 오히려 무리들이『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비방했다.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은 무당들이 하는 일이다. 무당들은 자기에게 있는 더 센 귀신들을 들어가게 하므로 작은 귀신들을 쫒아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무당처럼 여겼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손에 힘입어 귀신을 쫒아냈다.
여기에서『힘입어』라는 말이 나온다. 헬라어로는 엔으로『안에 있다』는 뜻이다. 엔 베엘세불은 바알세불 안에서라는 말이지만 사실은 예수님의 입장에서는『하나님의 손 안에서 쫒아냈다』는 말이다. 성령으로 명하시고 역사하셨다는 말이『성령 안에서』라는 뜻이다.
누가복음 11장 17-19절『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바울도 알고 예수도 안다”고 말하는 것이다. 악귀가 지배하는 사람의 입으로 말하는 것이다. 악귀는 악역을 맡은 천사로서 당연히 예수가 누구인지 알 것이다. 예수님은 천사보다 위에 계시는 분이시다.
히브리서 1장 3-5절『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사도행전 19장 17-19절『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포보스)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바울도 알고 예수도 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두려워했다. 포보스는 두려움 속에 놓이다, 놀람, 공포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악귀들린 자의 입으로 예수에 대해서 말하므로, 그들이 갑자기 두려움에 싸이게 된 것이다. 두려움은 어떤 상황에 대해서 마음의 반응인 것이다. 자신들이 생각한 것과 다른 현상이 나타날 때 일어나는 것이다.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자신이 믿는 신에 대해서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오늘날에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도들이 각자 유일신인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경배한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신도들은 자신을 지켜주시고 복을 가져다 주는 하나님, 또 어떤 신도들은 죄를 용서하지 않는 두려움의 하나님으로 날마다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만 하는 하나님, 천지를 지으시고 사람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도록 계획하시는 하나님 등 등의 하나님으로 생각할 것이다.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ἀποκριθὲν δὲ τὸ πνεῦμα τὸ πονηρὸν εἶπεν αὐτοῖς· τὸν [μὲν] Ἰησοῦν γινώσκω καὶ τὸν Παῦλον ἐπίσταμαι, ὑμεῖς δὲ τίνες ἐστέ
다시 번역하면,『악령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예수를 알고, 바울은 너희들과 친숙하지만, 너희들은 누구인가』라는 말이다. 예수를 알고(기노스코 γινώσκω)에서 기노스코는 히브리어의 야다와 같은 단어이다.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몸소 체험을 통해서 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천사의 관계로서 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바울은 너희들과 친숙하지만(파울로스 에파스타마이 휘메이스 Παῦλον ἐπίσταμαι, ὑμεῖς) 에파스타미아는 이해하다, 친숙하다 라는 의미로서, 인간적인 관계로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악령이 아는 것은 예수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신도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이 그와 연합되는 자에게 부활생명을 주시고, 원래대로 하나님 나라로 복귀하도록 하는 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성도는 원래 인간이 되기 전에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아버지가 탕자와 같은 자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공의의 심판받는 자가 되셨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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