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사도행전 26장 21-23절『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이 부분을 헬라어 성경으로 보면, “에이 파데토스 호 크리토스 에이 프로토스 에크 아나스타세오스”(εἰ παθητὸς ὁ χριστός εἰ πρῶτος ἐξ ἀναστάσεως νεκρῶν φῶς). 개역개정은 에이(εἰ) 프로토스(πρῶτος)를 번역하지 않았다.


에이 프로토스는 “첫번째와 같이”이다. 첫번째는 첫사람을 의미한다. 첫사람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첫사람이 그리스도로서 고난을 받은 것은 흙으로 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이 육체에 갇힌 것으로, 영의 입장에서는 죽음이 된다.


그리고 영이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육이 죽어야 하는 것이다. 영과 육은 상반된 것이다. 육이 살면 영이 죽고, 영이 살면 육이 죽는 것이다. 이는 누가복음 8장 54-55절『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부활은 죽었던 영이 일어나는 것으로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말을 모세나 선지자가 이미 예언한 것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부활생명을 주는 것이 빛을 비춰주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부활생명의 빛을 받아서 죽었던 영이 일어나는 것이다. 육의 몸이 죽으므로 영이 영의 몸을 입고 하늘에 앉히심을 받는다. 로마서 8장 10-11절『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바울의 열심에 대해 총독 베스도는 바울이 많은 학문을 공부하여서 미친 것 같다며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바울을 조롱하지만 바울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당하신 것과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신 것에 대해 담대히 전하였다. 그리고 오히려 위축되기 보다는 아그립바 왕에게 그가 전한 복음의 메시지에 대한 믿음의 결단을 촉구하는 말을 담대하게 전하고 있다.

사도행전 26장 27-28절『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포이에사이 ποιῆσαι) 하는도다』


바울이 그의 소명으로 여기며 일평생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그의 삶을 잘 요약해 줌과 동시에 이 말씀은 신약 성경 역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선교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이 복음은 어떤 작은 나라에 불과한 일이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밝힌다. 선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예언한 것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복음 전파에 대한 바울의 열정은 총독과 분봉왕 앞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있다. 비록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도, 생명의 위협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는 복음을 끝까지 전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과 같이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되게하려 한다”는 말에서 “되게한다”는 헬라어는 포이에사이인데, 다른 헬라어 성경(스테파누스)은 게네스다이(γενεσθαι)로 되어 있다. 게네스다이는 태어나게 한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게 한다는 말이다.


신도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육의 몸은 죽고, 영적으로 부활생명을 받아서 영이 영의 몸을 입고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현재적 부활생명에 대해서 관심없다면, 다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골로새서 2장 12절『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쉬네게르데테 συνηγέρθητε)을 받았느니라』


성경은 함께 일으키심을 받은 것을 부활이라고 말하고 여기서 분명히 문법적으로 과거형으로 말을 한다. 장차 육체가 죽어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미 부활했다는 것이다. 신도들은 부활을 죽었던 육체의 부활로 생각하므로, 성경이 밝히 말해도 성경의 내용을 믿지 않는 것이다.


부활의 상태를 골로새서 3장 3절에서『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라고 말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에베소서 2장 6절에서는『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말을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육이다. 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신도들은 눈에 보이는 육에 집착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62-63절에서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부활생명은 영에 관한 이야기이지, 육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열매이시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자마다, 부활생명을 받는다. 이게 성령세례이다. 성령은 죽었던 영을 살리는 생명의 빛이다. 마태복음 5장 14절『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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