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12-13
제 12문 :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에 따라 우리는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 어떻게 하면 이 형벌도 피하고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겠는가?
답 : 하나님은 자신의 정의가 만족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나 다른 이가 그의 정의를 완전히 만족시켜 드려야 한다.
누가복음 15장 1-2절에서『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세리와 죄인들은 모든 사람들로 부터 정죄받는 자들이다. 그들이 예수께 나아온 것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비난한 것이다. 자신들은 스스로 율법을 지켜 의롭다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하므로 예수님이 비유의 말씀을 하게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찾으면 이웃과 친구를 불러 잔치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복음 15장 7절에서『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 보다 더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는 회개에 대해서 언급된다.
그 다음에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비유가 누가복음 15장 8-10절에서 나오는데, 어떤 여자가 드라크마를 밖에서 잃은 것이 아니라 집 안에서 잃어버렸다는 말이다. 찾았다는 말에 대해서,『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라고 한다. 여기에도 회개가 언급된다.
회개가 무엇인가? 오늘날 회개의 의미가 repent에서 receive로 바뀐 것이다. 돌이키는 것에서 영접으로 바뀌었다. 위의 비유에서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과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살펴보면 잃어버린 양을 찾는 비유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다는 비유이다. 구원은 우리가 주님께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 않다. 주님이 아들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두번째 드라크마의 비유에서 드라크마는 죽어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서『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죽었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다 영으로는 죽어있다는 말이다. 2장 2절에서『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허물과 죄로 죽은 이유가 바로 세상 풍속을 따르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주인이 아닌 모든 사람들은 죽어있는 것이다. 교회에 다니고 있다 할지라도 세상을 따르고 있다면 주인은 마귀인 것이다. 에베소서 2장 3절에는『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이 말씀은 사랑의 자녀가 아니라 진노의 자녀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탕자의 비유는 아버지의 사랑을 언급하므로 사랑의 하나님을 생각하게 된다. 탕자의 비유는 탕자가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여기에서『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에서 죽었다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죽었던 자(십자가의 죽음)가 살아 돌아오는 자(부활한 자)를 사랑한다는 말씀이다. 죽었다가 살아 돌아오는 자는 하늘의 부활생명을 가진 거듭난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실로암 망대에서 망대가 갑자기 무너져서 그 곳을 지나가던 자가 열명이 넘게 죽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다. 오늘날에도 공사장을 지나가다가 억울하게 죽는 자들이 많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하기를『실로암 망대 때문에 죽은 자들이 참 애석하다』고 말하니까『너희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저렇게 죽으리라』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온전해지는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가 먼저 있다. 하나님의 의가 없는 자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있는 자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만이 하나님의 의(부활생명)가 있는 자이다. 따라서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의가 필요한 것이다. 의가 없는 자는 하나님이 진노하시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는 것이다.
로마서 1장 17-18절에서 말씀하고 있다.『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그리고 로마서 2장 5절에는『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이것이 모든 인간의 모습이다. 거듭나지 않은 자는 그의 아버지가 마귀이고 죄인들은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진노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는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다고 말씀을 한다. 사람의 생각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여, 하나님의 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육신적 자아가 죽어야만 한다는 회개가 있는 자를 찾기가 쉽지않다. 입으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의 죽음과 연합되는 자는 극히 드물다는 말이다. 주님이 주인되는 삶이 아니라 자기가 주인되는 삶을 사는 거짓된 교인들이 득실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노하시는데, 사람들은 사랑의 하나님 만을 노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 13문 : 우리 스스로 죄값을 치를 수 있는가?
답 : 절대 없다. 사실, 우리는 날마다 죄를 더해 가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기독교 교리는 죄의 성질에 대해서 말한다.『최초의 죄는 인간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이것을 먹음으로 죄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금하셨기 때문이다.』그리고 최초의 죄의 원인을 사람의 마음 속에 불신임과 불신앙의 씨앗을 심은 뱀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되어졌다 라고 말하며, 그 결과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곧 의와 성결과 하나님에 관한 참 지식을 상실하였다 라고 말한다. 마음에 불신앙이 들어간 것은 죄의 원인이지만, 죄의 기원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원죄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 이전에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의 마음이 생긴 것이다. 인본주의 자들은 죄에 대해서 계명을 어기는 것으로 오해한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을 죄의 시작점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죄의 시작점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탐욕)이 들어온 것이 죄의 근원인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최초로 죄를 지은 자는 하와였다.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난 자의 모형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 죄의 근원으로 여기므로, 계명을 지키면 죄가 아니라는 것으로 받아드릴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계명을 철저히 지키려고 해도 마음의 탐욕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 탐욕에 대해서 죽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계명을 지키면 죄가 없는 것으로 그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도들이 스스로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날마다 살피며, 그래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자들과 같은 것이다.
성경에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의 원죄와 그 원죄로부터 발생한 세상 죄가 있는데, 세상 죄는 율법을 어긴 것이 죄이나, 원죄는 율법 이전에 하나님을 대적한 죄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들을 향해서 죄에 대해서 죽으라는 것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죽는다는 말은 육체가 죽는 것이 아니라, 탐심의 근본인 육의 몸(fresh)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사도바울도 날마다 죽노라 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죽을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누군가에 의지해서 연합하여 죽었다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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