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14-15
제 14문 : 그러면 다른 피조물이 우리를 대신해서 죄값을 치를 수 있는가?
답 : 없다. 우선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 때문에 다른 피조물을 벌하시기를 원치 않으신다. 더구나 어떠한 피조물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를 감당할 수 없으며 다른 피조물을 구속할 수도 없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프로토토코스) 이시니』프로토토코스(πρωτότοκος)는 가장 앞에 계시 분을 의미한다. 영어 번역에서는 보면, the firstborn(첫태생)으로 번역되었다.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물로 말하지 않으나, 그는 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육으로는 마리아의 아들이었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예정에서,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개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창조물 중에서 처음 나신 첫사람이 되는 것이다. 첫사람은 죽어야 할 죄의 몸을 주시고, 마지막 사람은 살리는 영의 몸을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출애굽 당시 하나님은 첫태생을 모두 죽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해서, 사자가 자나가도록 한 것이다. 문설주에 피를 바르는 행위는 그 집안에 있는 자들도 이렇게 죽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죽었으므로, 천사가 지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은 양의 고기를 구워서 먹었다. 이는 부활생명을 얻어서 새로 태어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 피조물이 되어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마치 노아의 홍수와 방주를 연상한다. 방주에 들어가는 자도 물에서 다 죽은 자라는 것이다. 방주는 무덤과 같은 곳이다. 방주 안에는 칠해진 역청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그래서 물이 빠지고 방주에서 나온 팔명은 새롭게 태어난 피조물이라는 말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제 15문 : 그렇다면 어떤 중보자와 구원자를 기대해야 하는가?
답 : 그는 참 사람이면서, 진실로 의로우시고, 모든 피조물보다 큰 능력을 소유하신 참 하나님이셔야 한다.
요한일서 4장 14-15절『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예수님은 창세 전에 하나님이셨지만, 창세 후에 그리스도로 세상에 오셨을 때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분이다. 그 이유는 죄인들을 다시 회개하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들기 위함인 것이다.
요한일서 4장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과 성도와의 관계를 나타낸다. "우리"는 요한을 포함한 제자들의 무리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았던 자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되며, 성부 하나님이 성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성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과 성도간의 삼위일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삼위일체는 성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중보자와 구원자는 흠없는 어린양으로 속량해야만 한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1장 7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에서 『곧』이라는 말은 속량과 죄 사함이 동의어의 개념이 아니라,『이어서』라는 개념이다. 속량이 있어야, 죄사함을 받는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속량은 레위기 4장 20절의『속』을 인용한 것이다. 속량은 대속, 구속이라는 말로도 사용된다. 구입(Purchase)한 후에 해방(delieve)된다는 말이다. 죄를 씻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죄인을 사서 해방되는 것이 먼저다. 이것의 개념이 바로 욤키프러다.
창세기 6장 4절에서『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욤키프러의 명사형이 역청이다.『칠하라(덮으라)』는 말이 카파르다. 구약시대 성소 마당에 놋 제단이 있었다. 어린양에게 안수를 하면서 모든 죄를 전가시킨다. 이것도 redeem이라는 단어다. 그래서 죽은 어린양과 죄인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게 회개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속죄가 된다. 그 다음에 물두멍 대야에서 손과 발을 씻어준다. 씻은 다음에 성소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성소 안에는 덮개가 있는데, 이 덮개가 바로 이 단어다. 지성소에는 1년에 한번(음력 7월 10일) 들어가는데, 지성소 안에는 법궤가 있고, 그 위에 속죄소라고도 하고 시은소라고도 하는 덮개(히브리어로 코페르트:은혜로 덮었다는 뜻)가 있다.
모든 죄인들의 죄를 덮는 날이 바로 욤키프러였다. 그래서 1년에 한번 대제사장이 시은소 위에 피를 뿌려, 그 피가 덮어지는 것이다. 신약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주님이 죄인들을 피값으로 사는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휘장이 찟어짐) 부활하셔서, 대제사장으로서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께 나아갔으므로, 하나님이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를 사탄으로부터 피값으로 죄인을 사는 것이다.
『속』이라는 말은 덮혀지는 것(카파르)이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부터 덮혀지는 것이다. 그래서 속량이 없는 죄 사함은 없다. 하나님이 사는 자는 죄인이 회개하여 돌이키는 자로서, 하나님의 아들을 대신 죽게해서 사는 것이다. 놀라운 은혜다. 회개하는 자에게만 자기 아들의 죽음의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주어진다. 그래서 하나님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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