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페와 필레오

 아가페와 필레오


고린도전서 16장 1-2절『성도를 위하는 연보(테스 로게이아스:단수)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토테 로게이아:복수)를 하지 않게 하라』


로게이아스(λογείας)는 로고(말씀)에서 유래된바, 어근은 로기아(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지키는 것)이다. 연보라고 번역된 테스 로게이아스(τῆς λογείας )는 헌금을 의미한다. 헌금을 어떤 규정에 따라 지키라는 말이 아니라, 당시 예루살렘 교회가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자, 호 로고스께서 그 교회를 도우라고 말씀하신 것이 따라, 헌금하여 돕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주의 말씀을 듣고 각 교회에 이를 전해서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연보라는 말은 구제헌금을 의미한다.


번역한 자가 연보로 번역한 것은 구약성경에서 구제헌금으로 사용된 연보궤를 생각해서 번역한 것으로 여겨진다. 바울이 갈 때, 그때 헌금하도록 하지 말고, 미리 신도들이 미리 헌금을 모아두라는 것이다. 바울은 사람을 보내어 줄테니, 그 사람을 통해서 헌금을 전하겠다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갈 마음이 있지만, 예수님이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은 바울에게 에베소로 가라고 하시는 것이다. 에베소는 복음을 전하는 전도의 문이 열려있지만, 대적하는 자들도 많다는 것이다. 대적하는 자들은 교회 안에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6장 10-11절『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에베소에 가기 위해서는 시역자를 많이 배출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바울이 아볼로에게 고린도교회에 가도록 권했지만 당장은 갈 뜻이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아볼로는 고린도교회의 신도들이 은사를 많이 받았다고 하니 주눅들린 모양이다. 아볼로는 성경에 아주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는 많이 받았지만, 성경 말씀에 약한 면모를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 아볼로가 고린도교회에 가겠지만, 주눅들지 말고 남자답게 강건하게 나가라는 말이다.


아가야라는 사람이 스데바나를 전도를 했는데, 스데바나가 성령 충만을 받아서 성도를 섬기고 복음 사역을 하겠다는 것이다. 스데바나가 성령 충만해져서 성도를 섬긴 것 같이 모든 신도들이 주님께 복종되어져서 섬기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성령 충만해져서 그들의 심령 속에서 호 로고스의 임재를 경험하였기 때문에 바울이 기뻐하는 것이다. 그들(고린도교회 신도들)이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신앙의 수준이 낮아서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신앙적인 측면에서 그들의 부족한 것을 채워줄 것이라는 것이다. 바울이 이 세사람을 고린도교회로 보내려고 한 것이다.


바울이 생각하기에 그들의 신앙이 성령 충만해져서 심령 속의 호 로고스를 경험할만큼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 사람들은 좀 이들을 알아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교회 신도들에게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필레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아가페와 필레오(필레이φιλεῖ) 는 다른 의미의 사랑이다. 아가페는 죽어있던 영을 살리기 위한 십자가의 사랑이고, 필레오는 친구를 사랑하는 그런 사랑이다. 예수님을 친구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갈릴리로 가셔서 베드로를 만났을 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아가페)라고 물렀다. 베드로가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필레오) 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이 질문하신 사랑하느냐(아가페)는 네가 나를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그리스도로 생각하느냐 라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삼년동안 동행했던 그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두번째 같은 질문을 하고 베드로도 같은 대답을 한다.


세번째는 예수님이 필레오로 사랑하느냐 라고 베드로에게 질문했다. 그리고 세번쩨 베드로의 대답 역시 필레오였다. 그리고 예수님이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이 베드로의 눈높이로 낮추어 주셨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아가페 사랑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필레오로 사랑하다가, 아가페를 깨닫고 아가페의 사랑으로 전환되었을 것이다. 고린도교회의 신도들에게 아가페의 사랑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필레오의 사랑도 없는 상태인 것이다.


아가페의 사랑은 죽었던 영을 살리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그리스도와 연합되므로 아가페의 사랑이 적용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것을 믿지 않는 자들은 아가페의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신도가 타인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어도, 그는 예수님과 같은 아가페를 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필레오의 사랑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육체가 있으므로, 십자가의 죽음과 같은 사랑을 베풀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예수님과 연합되므로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지만, 남에게는 그런 사랑을 베풀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해준다.


신도가 주님에게 필레오로 사랑한다는 말은 주님의 뜻을 따라 양을 먹이는 일이다. 전도는 신도들에게는 의무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면, 의무가 아니라, 사랑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죽어있는 영을 살리는 일은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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