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고린도후서 1장 3-4절『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파라클레세오스)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들맆세이)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파라칼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파라칼레인)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파라클레세오스) 하시는 이시로다』
파라클레세오스(παρακλήσεως)는 권면이라는 의미다. 보혜사라는 말이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다. 즉 보혜사는 권면을 하시는 분이다. 권면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들맆세이의 기본형은 들맆시스다. 들맆시스는 떠밀려가는 것(push)을 의미한다. 전도를 하다가 어려움에 직면하면, 심령 속의 성전으로 들어오라고 압박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이 여러가지의 말씀으로 권면하시는 것이다. 파라칼론, 파라칼레인, 파라클레세오스는 모두 권면하다 라는 의미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환난당하므로, 지성소로 떠밀림을 당하는 것이다. 주님이 복음에 더 정진하라고 바울을 떠미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고린도교회 신도를 권면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다.
주님이 복음을 전하는 성도에게도 그의 심령 속의 지성소로 들어가도록 떠민다. 주님이 성도를 그들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지성소로 떠미는 것은 결국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 성도에게 말씀하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 수행이 어렵지만, 기쁜 마음으로 참고 하는 것이 바로 고난이 아니라 열정적 수난이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은사를 많이 경험했지만, 휘포모네는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바울이 지적하는 것이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함에 많은 환란을 겪었다. 그래서 주님이 심령 속의 지성소에 들어오라는 것이다. 주님이 바울에게 전달할 말이 있는 것이다. 전도를 하다가 힘이 들고, 그래서 바울 일행이 너무 지치므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순간 드는 것이다. 주님이 이렇게 떠미는 이유는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주님 만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복음 사역이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포기하면 죄 가운데 다시 빨려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음을 다 잡아서 복음에 전진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성도 역시 지성소로 들어가 휘포모네를 통해서 진정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므로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신도들에게 복음 사역에 함께 도우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장 14-16절『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메투스)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듀테란)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예수의 날은 그리스도께서 계시로 나타나는 그 날을 의미한다. 계시는『덮개를 벗기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 날에 감추어진 비밀이 드러나는 것이다. 비밀이 드러나는 것은 호 로고스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의 심령에 임재하시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는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 사역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날은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 그 날인 것이다. 성도는 계속 이렇게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이렇게 확장시켜 나가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며, 성도가 사탄이 지배하는 곳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를 세워서, 모든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듀테란(δευτέραν)은 두번째 라는 의미다. 첫번째 은혜는 세례를 받는 것이다. 세례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5-6절「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두번째 은혜는 성도가 심령 속의 성전에 임재하신 보혜사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위로받는 것이다.
바울이 마게도니아에서 고린도로 가기로 계획했지만, 가지 못한 것을 두고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바울이 육적인 생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육적인 생각으로 바울이 경솔히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복음의 사역에 있어서는 육적인 생각으로 어떤 것은 예, 어떤 것은 아니요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령 속의 호 로고스의 말씀에 대해서는 예만 있지 아니요가 없는 것이다. 바울은 복음의 사역을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라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장 20-22절『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예만 있는 것이다. 그의 종은 무조건 그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된다. 기름을 붓는 것은 사역자로 쓰시는 것이다. 도장을 찍는 것은 상속자로 도장 찍는 것이다. 그 보증으로 성령을 주신다.
사도행전 6장 3-4절『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교회의 지도자를 세우는 기준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라는 것이다. 열두 사도들은 기도하는(프로슈케)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쓴다는 것이다. 프로슈케는 지성소 기도다. 심령 속의 지성소로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께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인 것이다.
호 로고스로부터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전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역자들이 하는 기도는 대개 세상적인 기도가 많고, 말씀도 호 로고스로부터 받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자기 생각을 섞어서 말하는 것이다. 성령 충만한 사역자는 호 로고스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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