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


로마서 1장 9-10절『내가 그의 아들의(투 휘우) 복음 안에서(토 유앙겔리온τῷ εὐαγγελίῳ) 내(무 엔μου ἐν) 심령으로(엔 토 프뉴마티ἐν τῷ πνεύματί) 섬기는(라트류오)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프로슈케)에 쉬지 않고(호스 아디알레잎토스) 너희를 말하며(므네이안)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휘몬)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포이우마이)』


호 라트류오 엔 토 프뉴마티 무 엔 토 유앙겔리온 투 휘우(ᾧ λατρεύω ἐν τῷ πνεύματί μου ἐν τῷ εὐαγγελίῳ τοῦ υἱοῦ)는 내가 섬기는, 나의 성령 안에서, 나의 복음 안에서 라는 의미다.


이 말은 관계대명사 호와 하나님을 연결한다. 즉 바울은 라트류오 엔 토 프뉴마티 무 엔 토 유앙겔리온 투 휘우를 통하여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이다.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엔 토 프뉴마티(성령 안에서)이고, 엔 토 유앙겔리온 토 휘우 아우투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가 되는 것이다. 프로슈케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하는 기도이다. 바울이 기도할 때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언급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호스 아디알레잎토스(ὡς ἀδιαλείπτως)는 심지어 쉬지 않고 라는 의미다. 호스 아디알렢토스 므네이안 휘몬 포이우마이(ὡς ἀδιαλείπτως μνείαν ὑμῶν ποιοῦμαι)는 심지어 쉬지 않고 너희의 언급을 만들고 있다 라는 의미다. 포이우마이는 중간태로서 이것은 바울이 기도할 때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언급하는 것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바울은 단순히 로마교회를 위한 기도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프로슈케의 기도로 인해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가 생긴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즉 프로슈케 기도는 기도 대상과 자신에게 다 유익한 기도가 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 교회에 반드시 가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어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은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안수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그 은사를 나누어주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제사장의 믿음을 갖는데 있어서 이 은사가 필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은사(예언의 은사)를 주려고 하는 이유는 첫째, 그들 안에서 함께 권면되어지기 위함이다. 보혜사가 옆에서 권면하신다.


두번째는 서로 안에 있는 그 믿음을 통하여 라는 것이다. 그 믿음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부활하는 믿음을 의미한다. 십자가의 죽음이 없는 부활은 불가능한 것이다. 성도가 성령세례를 받기 위한 조건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어 죽는 그 믿음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성도간에 이 믿음을 통하여 은사를 전해줄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은 열매를 말한다. 복음의 열매는 내가 믿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될 때 복음의 열매가 맺히게 된다. 그리스도의 믿음을 소유한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 잇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고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학문적 배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보여준다.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에게 복음을 전하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제대로 된 복음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자기 스스로의 인식이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오늘날 전하는 복음과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그 분을 영접하고 그 분 또한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 서로 대화하며, 성도가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듣고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복음 전도자로서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로마서 1장 16-17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에파이스퀴노마이) 아니하노니(우 가르)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엔 아우토) 하나님의 의(디카이오쉬네)가 나타나서(아포칼륍테타이) 믿음으로(에크 피스테오스) 믿음에 이르게(에이스 피스틴)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엔 아우토(ἐν αὐτῷ)는 이것 안에라는 말이다. 이 말은 1장 16절의 토 유앙겔리온(복음)을 말하므로서, 엔 아우토는 복음 안에 라는 의미가 된다.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계시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의라고 번역된 디카이오쉬네(δικαιοσύνη)는 재판에서 사용되는 용어다. 공정한 재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의롭다는 말은 옳고 그름을 공정하게 판결한다는 의미이며, 불의하다는 말은 옳고 그름을 편파적으로 판결한다는 말이다. 청탁을 받고 편파적으로 판결하는 재판관을 불의한 재판관이라고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인간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다. 성경은 재판장으로서의 하나님의 의로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아포칼륍테타이ἀποκαλύπτεται(현재시제, 수동태)의 기본형은 아포칼륍토이다. 아포(from)와 칼륍토(cover)의 합성어로서 덮게를 벗기다 라는 의미이다. 덮개를 벗겨서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을 은연 중에 드러낸다는 의미다. 문법적으로 현재시제 수동태이므로, 복음 안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에 의해 계속적으로 계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복음은 성경의 말씀이 아니라 호 로고스인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에크~에이스(ἐκ ~ εἰς) 는 영어의 from ~into와 같은 개념이다.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에 의해 계시되어지는데, 믿음에서 시작해서 믿음 속으로 들어갈 때 까지 그렇게 된다는 의미다. 시작하는 믿음은 초보적인 믿음(내가 믿는 믿음)이고, 믿음 속으로 들어가는 믿음은 거듭난 자의 믿음(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인 것이다.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한글 개역개정으로 번역된 이 부분을 헬라어 성경으로 보면,『카도스καθὼς(~같이) 게그랍타이(γέγραπται그것이 기록된 것) 호(ὁ 그) 데(δὲ그래서) 디카이오스(δίκαιος 의인은) 에크(ἐκ ~부터) 피스테오스(πίστεως 믿음으로) 제세타(자신을 살릴 것이다)』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부터 자신을 살리게 될 것이다. 즉 믿음으로부터 시작한 의인은 자신을 살릴 것이다 라는 의미가 된다. 『호(그) 데(그래서) 디카이오스(의인은)』에 대해서는 신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심하여 자신의 작은 믿음에서 시작하여 신앙의 목표인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안으로 들어가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기만 하면 의인이 된다는 말은 잘못된 것으로, 칭의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