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105
제 105문 : 제 6계명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답 : 내 이웃을 생각이나 말이나 외모나 몸짓으로 그리고 더욱 분명하게는 실제 행동으로 얕잡아보거나 모욕하거나 증오하거나 죽이지 않아야 하며 다른 사람들의 그러한 일에도 가담하지 말아야 한다. 근본적으로 복수에 불타는 모든 마음을 끊어버려야 한다. 또한 내 자신을 해롭게 하거나 성급하게 위기에 빠뜨리지 않아야 한다. 정부가 무기를 갖추고 있는 까닭의 하나는 바로 살인을 막기 위한 것이다.
제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
피흘림에 대한 말씀이다. 피는 하나님에게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이다. 피는 아무 곳에서나 흘려져서는 안된다. 레위기에서도 피흘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인간의 최초의 살인 범죄는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이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으로 부터 왔으며, 아무도 생명을 함부러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생명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다. 모든 생명은 한정된 생명이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
피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생명을 찾아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씨의 약속이다. 씨는 생명의 근원이다. 약속의 씨가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 된다. 약속의 씨는 그리스도(메시야)이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것이다.
살인에는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는 탐욕이 숨어있다. 하나님께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두고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지 않고 아벨의 제사는 열납했다. 가인이 가지고 온 것은 땅의 소산이었다. 땅은 토지이다. 아담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아다마(토지)에서 유래되었다고 본다. 땅의 소산은 아다마의 소산이다. 즉 사람의 근본된 토지를 갈아서 생산해 낸 열매를 말한다. 하나님 없이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의도를 가지고 열심히 행해서 나타난 열매를 말한다.
율법에 의하면 땅의 소산인 곡물도 제물로 열납하셨다. 땅의 소산이기 때문에 열납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여기서 말하는 땅의 소산은 하나님없이 스스로 만든 것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받지 않으신 것이다. 아벨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첫 새끼를 드렸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이 여인의 후손을 약속했는데, 여인의 후손은 약속의 씨인 그리스도이시다. 가인이나 아벨은 둘 다 약속의 씨에 대한 말을 듣고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인은 그 약속을 믿지 않았다. 약속의 씨에 대한 제사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생산한 것을 하나님께 드렸고, 아벨은 약속의 씨에 대한 믿음의 제사를 드렸다.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았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의 하나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 때에도 세상이 멸망을 당했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을 떠난 자에 대한 심판의 모형을 보여주신 것이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심판을 하시는지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하나님 없이도 하나님처럼 의로워질 수 있다는 그런 마음으로 생산한 것들에 대한 것은『하나님이 열납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심판의 예표를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이 시대에도 가인과 같은 의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안되는 것이다. 가인과 같은 의도와 생각과 노력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가인은 아벨과 같이 약속의 씨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안에 거하기를 싫어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분노와 화였으며 아벨을 쳐죽이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살인이라는 그 내면에는 자기의 의를 나타내는데 방해가 되면,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숨어있다. 창세기 4장 7절에서『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다. 즉 하나님을 떠난 자가 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육신의 소욕인 것이다. 육체가 원하는 마음의 모든 것이 바로 육신의 소욕이며, 이것들이 바로 죄라고 한다. 하나님없이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이다.
요한1서 2장 15-16절에서 같은 말을 하고 있다.『죄를 다스릴지니라』라는 말은『육신의 소욕을 절제하라』는 말이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7장 7절에서 말하고 있다.『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육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인에게『죄가 원하는 것을 하지말고 다스릴지니라』하셨으므로 깨달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것은 『육신으로는 선을 행할 수 없고 악을 행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육신이 원하는 대로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하나님은 육신으로 비롯된 마음을 죽이라고 하신다. 육신으로 비롯된 마음은 곧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유혹의 탐심이며, 이것을 사도바울은 옛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옛사람은 죽어야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로마서 6장 6절에서는『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을 잘 지켜서 의를 이루어보라는 말이지만, 사실상 율법을 통해서 죄를 발견하고 육신적 자아를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다. 육신적 자아를 버리게 되면 약속의 씨(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된다. 창세기에서 말씀하는 바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찾으라는 말이다.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육신의 요구대로 아벨을 쳐죽이고 말았다. 이 땅에서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자와 못박히지 않는 자로 나뉘어진다. 죽느냐, 죽지 않느냐의 차이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고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을 자라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지 않는 자는 마음 속에 육을 따르는 탐욕이 살아있으며, 그 탐욕은 자기 분노로 이어지게 된다.
가인은 육체의 소욕대로 땅을 갈아보지만 그 속에는 영생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가인과 가인의 후예들은 자기의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게되었으며, 그 결과는 창세기 6장 5-6절에서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했다. 전도서 8장 11절에도『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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