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로마서 2장 1-2절『그러므로 남(톤 헤테론)을 판단하는(크리논)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엔 호 가르 크리네이스 톤 헤테론)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세 아우톤 카타크리네이스)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카타 알레데이안)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오이다멘)』


톤 헤테론(τὸν ἕτερον)은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자를 의미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들을 함부러 구별하고 정죄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크리논(κρίνων)은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말이다. 주로 재판정에서 사용되지만 운동경기의 심판에서도 사용된다. 그러나 판단하다 라는 말은 정죄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잘못된 번역이다.


『엔 호 가르 크리네이스 톤 헤테론ἐν ᾧ γὰρ κρίνεις τὸν ἕτερον』그것 안에서 네가 다른 사람을 심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죄가 자기를 향하는 것이다.


세아우톤 카타크리네이스(σεαυτὸν κατακρίνεις)는 네가 네 스스로를 완전히 심판하고 있다는 말로서 성경은 불신자들이 행하는 불의보다 기독교인들이 행하는 불의를 더 심각하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내에서 행하는 불의를 심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세상의 법정에 가져가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불의한 삶을 살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의로운 삶을 살아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 사람들의 불의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헬라어 성경에서 오이다멘(οἴδαμεν)은 맨 앞에 있다. 이는 머리로 깨달아 안다는 말로서 기노스코(히브리어 야다)와는 다른 개념이다.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통해 지식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카타 알레데이안(κατὰ ἀλήθειαν)은 (성경에 기록된)진리를 따라서 라는 의미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지만, 그 심판이 자신에게 임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 같은 불의한 일을 한다하더라도 예수 믿기만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이런 문제에 빠지면 하나님의 사탄을 동원해서 가시를 찌를 것이다.


인간은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다. 십자가에 높이 들린 인자를 바라보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십자가에 높이 들린 죄의 몸을 하고 있는 자가 바로 나 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자기 십자가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으면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오직 자기는 죽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 요구하는 것이다. 자기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만 구원받는다. 그래서 날마다 죽었노라를 기억하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는 누군가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으라는 것이다.


예수를 믿지만 자기의 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옛사람)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탐욕인 옛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돌이켜야 하는데, 이 말을 고집스럽게 무시하는 것이다.


로마서 2장 6-9절『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카타 타 에르가κατὰ τὰ ἔργα) 보응하시되(아포도세이) 참고 선을 행하여(카드 휘포모네 에르구 아가두καθ’ ὑπομονὴν ἔργου ἀγαθοῦ)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토 카콘)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프쉬켄)에는 환난(들맆쉬스)과 곤고(스테노코리아)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아포도세이(ἀποδώσει)는 마지막 심판 때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율법을 따르는 자에게 그가 행한 행위를 따라서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세상에 살면서 어떤 일을 했는가를 따라서 심판하시는데, 어떤 일은 자기의 일을 하다가 죽었는가,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죽었는가 이다.


하나님의 일은 죽었던 영을 살리는 일이다. 카드(~을 따라서) 휘포모네는 휘포(~아래)와 모네(머물다)의 합성어이다. 즉 하나님의 보좌 아래 머문다는 의미다.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신 주님의 보좌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일을 실현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선을 행하는(에르구 아가두ἔργου ἀγαθοῦ) 그 행위라는 말은 다른 종교와 같은 그런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을 살리는 가치있는 일이다. 자신이 받았던 은혜를 땅 속에 묻어두고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살았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게으른 자가 될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의 비유는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토 카콘(τὸ κακόν)은 악을 행한다고 표현되었으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는 자를 의미한다.


프쉬켄(ψυχὴν)은 육적 생명이다. 개역개정에는 영이라고 번역되었는데, 오류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치있는 사역을 하지 않을 때는 육적 생명에 어려움과 곤고가 있을 것이다. 사탄의 가시가 찌르는 것이다.


들맆쉬스(θλῖψις)는 이런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이 지성소의 보좌로 성도들을 들어가도록 떠민다. 그래서 성도들은 심령 속의 보좌에 임재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스테노코리아(στενοχωρία)는 육적 생명이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므로 마음의 괴로움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 바울이 이렇게 구별하는 이유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지만 율법도 행하는 그런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유대인들과 헬라인들 간에 충돌이 많았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주의를 바탕으로 같은 그리스도인들을 정죄하는 일들이 있었으며, 율법주의는 복음을 전하는 것에도 걸림돌이 된 것이다.


오늘날에도 진리의 복음을 전하면, 비진리에 있는 신도들이 진리를 전하는 신도들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한다. 율법주의자들은 이단에 빠져 있으면서, 상대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일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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