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로마서 4장 9-10절『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헤 피스티스ἡ πίστις)이 의(디카이오쉬넨δικαιοσύνην)로 여겨졌다(엘로기스데ἐλογίσθη) 하노라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엘로기스데(ἐλογίσθη)는 아오리스트 시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다고 평가되는 것이 순간 성령세례를 통해 일어난 것이다. 바울은 모형론적 성경해석에 있어서.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의 모형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사는 것처럼, 아브라함도 씨의 언약인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살았다는 것이다.


바울은 할례나 무할례는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기시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오직 믿음인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은 것은 할례나 무할례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하셨다.


아브라함이 99세의 나이에 할례를 받고 13세된 이스마엘과 집안의 모든 종들에게 할례를 했다.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침 것이라고 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할례를 일종의 증표로 설명한다. 어떤 일을 했을 때 확인 도장을 찍어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은 것은 믿음 때문이지 할례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은 믿는 자의 사람을 통해서 다음 세대에 흘러가는 것이다. 할례의 의식과 세례의 의식은 상징적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흘러가는 것을 믿는 의식인 것이다. 할례가 의롭다 여김을 받는 사람에게 주는 증표라면 물세례 역시 의롭다 여김을 받는 증표이다. 그러므로 성령세례와 연결되어야만 이 증표가 효력이 있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은 자에게 증표로서 세례가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서 4장 13-14절『아브라함이나 그 후손(토 스페르마티)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토 클레로노몬 아우톤 에이나이 코스몬)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알라 디아 디카이오쉬네스 피스테오스) 것이니라 만일(에이)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헤 피스티스)은 헛것이 되고 약속(헤 에팡겔리아)은 파기되었느니라』


토 스페르마티(τῷ σπέρματι)는 그 씨이다. 씨와 후손은 다른 개념이다. 씨는 시작을 의미하고, 후손은 그 씨로부터 나온 것인데, 번역의 오류다.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의 씨인 아브라함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추어진다. 씨가 없으면 후손도 없는 것이다.


토 아브라암 에 토 스페르마티 아우투(τῷ Ἀβραὰμ ἢ τῷ σπέρματι:그 아브라함이나 그의 씨)는 아브라함이나 아브라함과 같은 그 씨라는 의미로서, 여기서 그 씨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아브라함도 믿음의 씨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역시 믿음의 씨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씨가 되어서 이스라엘이 나왔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믿음의 씨가 되어 기독교가 나온 것이다.


『토 클레로노몬 아우톤 에이나이 코스몬τὸ κληρονόμον αὐτὸν εἶναι κόσμου』은 세상의 상속자인 그를 존재하도록 하는 그 씨다. 토는 주격인데, 토가 성별로는 중성으로서 앞의 토 스페르마티(그 씨)를 가리키는 것이다.


토 스페르마티를 통해서 세상의 상속자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바꿀 세상의 상속자는 그리스도이지만 그것은 그 씨인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알라 디아 디카이오쉬네스 피스테오스(ἀλλὰ διὰ δικαιοσύνης πίστεως)는 그러나 믿음의 의로움을 통하여 라는 말이다. 디아는 말미암아가 아니라 통하여 라는 것이다.


가정법 전치사 에이(εἰ)가 사용된 것은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 율법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부르셨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는 하나님의 의를 물려받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씨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는데, 헤 피스티스(ἡ πίστις)는 그 믿음이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후손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해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겠다고 하셨다.


에 팡겔리아(ἡ ἐπαγγελία)는 그 약속이다. 그러나 그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대인들이 믿음 대신 율법을 택하므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지 못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웃었다. 17장 1-2절에서는『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99세까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을 이기고, 멜기세덱이라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가 100세가 되어서는 자기 몸에 죽은 것과 사라의 태가 죽은 것을 알고도 믿음이 알고도 약하여지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새생명을 얻는 것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그것이 이루어질 줄을 믿었던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이런 믿음은 자기가 믿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향을 떠났지만, 계속 육의 마음이 반응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씨의 약속을 하지만 86세는 이스마엘을 낳는다. 오늘날 우리도 영적 체험을 하고 하나님 말씀을 배운다고 해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을 하지 않으면 씨의 약속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서 죽은 것 같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믿고 순종하게 된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육의 마음이 아니라, 영의 몸으로 태어난 자의 영의 마음으로 순종하게 된다. 육의 마음에서 자기의 결단이 아니라, 자기라는 존재를 부인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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