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로마서
2장 10-12절『선(토
아가돈)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우 가르 에스틴 프로소폴렘푸시아 파라 토 데우) 무릇 율법(노무)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호소이)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토 아가돈(τὸ ἀγαθόν)은 그 가치있는 일이다. 죽었던
영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가치있는 일이다. 먼저는 유대인이라는 말은 유대인들은 율법주의에 빠진 자들이
많았으므로, 먼저 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우 가르 에스틴 프로소폴렘푸시아
파라 토 데우οὐ γάρ ἐστιν προσωπολημψία παρὰ τῷ θεῷ』는 하나님의 옆에서는 사람의 관점이 없다는 의미다. 프로소폴렘푸시아에서 한글 개역개정에서는
사람의 외모로 취함이라 번역되었고, kjv에서는 respect of
persons(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으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프로소폰(~을 향해 노려보다)와 람바노(받아드리다)의 합성어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노려보는데,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그러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노무(νόμου)에 관사가 있으면, 모세오경(율법)을 의미하며, 관사가
없으면, 세상의 모든 법을 의미한다. 호소이(ὅσοι)는 누구든지라는 의미다. 세상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 때 그렇게 하신다는 말이다.
“무릇 율법(노무)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자는 율법 없이도 결국 심판을 당하고,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으로 심판을 받는 것으로 율법주의자들은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구원하겠다고
하시는데, 율법주의자들은 스스로 율법을 바라보고 의를 이루겠다고 고집하므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로마서 2장 13-15절『하나님 앞에서는(파라 데오)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율법(노무)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투
노무)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노무)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노무)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투 노무)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파라 데오(παρὰ θεῷ)는 하나님 옆에서 라는 말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주님 옆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라는 말이다.
율법을 행하는 자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을 한다. 율법을 행하는 자라는 의미는 마치 율법의 조문대로 행하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으나, 행하는 것은 율법의 완성을 의미하며, 율법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되는 일이며, 또한 함께 부활함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심령 속에 임재하신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의 말씀대로 명령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를 주로 믿기만 하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의로운 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주님은
그때 그때 말씀하시는데, 대부분의 말씀은 성도의 심령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괄호로 묶여있는 부분은
사본에 따라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스테파누스
헬라어 성경이나, 넷슬 알란드 헬라어 성경에는 모두 이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율법과 관련한 헬라어에서
노무와 투 노무가 있다. 노무는 일반적인 법의 개념이고, 투
노무(τοῦ νόμου)는 모세의 율법을 의미한다. 이 본문은 모세의 율법을 갖지 않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또한 그것을 양심의 법과 연결시키고 있다.
양심이라고 번역된 쉬네이데세오스(συνειδήσεως)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마음이다. 이 하나님이 주시는 양심이 증거가 되는 것이다. 율법을 받지 않은
이방인이 유대인들이 하는 대로 율법주의를 따라 행할 경우에도 마음에 따라 적용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은 율법주의에 빠질 이유가 없는데, 유대인들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성령세례 받은 자는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자가 되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성도들은 성령께서 은밀한 죄까지도 들추신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모든 죄악으로부터 사하심을 받고 그리스도의 의에 이르는 것이다. 바울은 율법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지만, 복음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이 없음에도
율법 위에 있으므로 안식이 있다고 여긴 것이다. 바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로마교회에 있는 유대 율법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유대인으로 칭하고 다닌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바울은 율법주의에 사로잡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다.
로마서 2장 19-22절『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율법에 있는(엔 토 노모) 지식(테스
그노세오스)과 진리(테스 알레데이아스)의 모본(모르포신)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율법주의자들의 특징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이 다른 사람들을 어둠 가운데서 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맹인들의 인도자이고, 어둠 안에 있는 자들이다.
엔 토 노모(ἐν τῷ νόμῳ·)는 율법 안에서 라는 의미이고, 테스 그노세오스(τῆς γνώσεως)는 그 지식, 테스 알레데이아스(τῆς ἀληθείας)는 그 진리이다. 그리고 모르포신(μόρφωσιν)은 형상인데, 기본형은 모르포시스이다. 한글개역 성경에는 모본으로 번역되었는데, 근본이 되는 틀이라는 의미다. 헬라어에서 모본으로 해석되는 것이 튀포스이다. 그래서 율법은 지식과
진리의 진품이 아니라 복사품이라는 말이다.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을 자랑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전파하려고 하지만, 자신들 스스로가 그것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을 한다. 율법은 강제규정이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성도들은 강제 규정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마음에
지키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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