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로마서 2장 23-26절『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카토스 게그랖타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네가 율법을 행하면(에안 노몬 프리쎄스) 할례가 유익하나(페리토메 멘 가르 오펠레이)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타 디카이오 마타 투 노모)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을 범한다. 율법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과 율법을 지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카토스 게그랖타이(καθὼς γέγραπται)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라는 말이다. 구약성경에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을 욕하고 모독하는 일이 나오는데, 그 원인이 율법주의 유대인들인 것처럼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원인이 율법주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율법과 율법주의는 분명히 다르다. 율법은 인간들에게 죄를 깨닫게 해주는 것으로서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율법주의는 규정에 얽매여 지키느니 마느니 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면 의인, 안지키면 불의한 자라는 것이다. 유대인들도 완전히 지키지 못하면서 남들에게 허탄한 자랑을 하는 것이다.
에안 노몬 프라쎄스(ἐὰν νόμον πράσσῃς)에 대해서, 할례를 받은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율법을 자랑하지만 완전히 다 지키지는 못한다. 율법을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무할례자와 같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율법을 지키다가 인간은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제물되신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여인의 후손인 씨의 약속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페리토메 멘 가르 오펠레이(Περιτομὴ μὲν γὰρ ὠφελεῖ)이 말은 “왜냐하면 참으로 할례가 유익하다” 라는 말이다. 바울이 유대인의 율법에 대해서 말을 하면서 할례를 언급했다. 할례의 중요성은 부모에게 자녀를 율법에 따라 키우겠다는 서약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율법을 잘 지키는 아이로 키우겠다는 의미도 담겨져 있다. 그러나 율법을 아무리 잘 알고 있어도 지키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타 디카이오 마타 투 노모(τὰ δικαιώματα τοῦ νόμου)는 율법의 의들이다. 바울은 모세의 율법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할례의 근본 취지는 율법의 조항을 지키는 강제 규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의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율법을 지킨다는 말은 마음에 새겨 보호하며,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것이다. 그래서 그 마음에 법을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의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심판과 사랑이다. 죄인에게는 심판이지만, 회개하는 자에게는 사랑으로 대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떠난 죄를 회개하지는 않고,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그들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로마서 2장 27-28절『또한 본래(에크 퓌세오스)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텔루사)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엔 사르키 페리토메)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페리토메 카르디아 엔 프뉴마티)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엔 사르키 페리토메(ἐν σαρκὶ περιτομή)는 육신 안에 할례를 의미한다. 페리토메 카르디아 엔 프뉴마티(περιτομὴ καρδίας ἐν πνεύματι)는 성령 안에 마음의 할례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물세례와 성령세례도 이와 같다. 물세례를 받은 자가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성령세례를 받은 자가 구원을 받는다. 그 이유는 육으로는 예수와 함께 죽고(물세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성령세례)이 구원이다. 그래서 물세례는 율법에 대해서 죽었음을 나타내지만 다시 태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성령세례는 성령의 능력으로 위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구원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물에서 율법에 대해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6-7절『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구원의 핵심은 죄를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그래서 거듭나게 된다. 거듭나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옛사람이 죽어야만 한다. 물세례는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다.
왜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인가? 자기 속에 탐욕이라는 악이 오염되어 있으므로,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육의 몸이 있는데, 어떻게 죽으라는 것인가? 자살이 아니라,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되는 믿음으로 죽은 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 믿음은『내가 믿습니다』라고 말하므로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왜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할 존재인가를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이 믿음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믿음으로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된다. 회개하지 않으면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회개는 어둠으로부터 빛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자기가 영적 어둠의 상태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 때, 돌이킬 수 있다. 그래서 어둠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 회개다.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어둠에서 갇혀있는 것이다. 인간 스스로 사탄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바로왕의 지배를 받았던 히브리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처럼, 우리도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을 깨달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몸부림인 것이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위하여, 자기의 아들을 죽게 하시고, 그 피값으로 사탄으로부터 회개하는 자를 이끌어내신다. 회개없는 믿음은 거짓이 된다. 그래서 회개는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6장 7절의 말씀처럼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며, 율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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