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은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
율법은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3장 16절『우리가 알거니와(오이다멘) 무릇 율법이(호 노모스) 말하는(레게스)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토이스 엔 토 노모)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
오이다멘(οἴδαμεν)은 머리로 깨달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즉 율법의 정체를 깨달아 아는 것이다. 호 노모스(ὁ νόμος)는 그 율법이다. 토이스 엔 토 노모(τοῖς ἐν τῷ νόμῳ)는 율법 안에 있는 자들이다. 즉 율법의 범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효력이 발생한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 안에 속해 있는 자들이다. 기독교 역시 율법의 범주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모세의 율법으로 잘잘못을 가리는 모든 입들을 막으신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이유는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즉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자들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나의 믿음과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만날 때 은혜 아래 있는 자가 된다.
갈라디아서 3장 23-25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과 연결되어야 구원받는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통해 나와 하나님을 연결시켜 준다.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방적으로『내가 믿습니다』라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로 옷입는 자 뿐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옷입은 자만 아신다. 이게 세례다.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서『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은 부모로 받은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낸바 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2-7절에서 말한다. 그래서 죽은 자가 의롭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몸을 입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게 거듭남이다.
거듭남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베드로전서 1장 3절에서 말하는 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믿는 우리도 (현재적으로) 부활되는 거듭난 자라고 말한다.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한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왜 하나님이『옛사람의 못을 벗고 그리스도의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말하시는가? 그 이유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탐욕의 우상이 육체 속에 번져 있기 때문이다. 원죄라는 죄악이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로새서 3장 5-10절에서『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하나님은『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하신다. 땅에 있는 죄의 지체는 개선의 대상이 아니라, 죽어야만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죽는가? 세례가 죽음을 나타낸다. 로마서 6정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은 땅의 지체를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개선의 대상인냥 그렇게 생각하고, 날마다 죄를 고백하고 반성하고 변화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날마다 죽노라』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은『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마태복음에서는『부르심을 받아 교회에 앉아있는 자들은 많지만, 택함을 입은 자들은 적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행위의 열매로 판단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성경은『좋은 열매 맺는 나무와 나쁜 열매 맺는 나무』로 비유하고 있다.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다. 믿음은 반드시 행위를 수반한다는 말씀이다. 이 행위는 거듭난 자에게 임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서 3장 28절에서 말하는『율법으로 인하는 행위는 의롭다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3장 28절에서 말하는 믿음은 거듭난 자의 믿음이다. 교회에 처음 나와서 영접기도를 하고『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한다고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옛사람의 옷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의 옷을 입은 자의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로마서 3장 20절『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엑스 에르곤 노무) 그의 앞에(에노피온 아우투)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사륵스)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에피그노시스 하마르티아ἐπίγνωσις ἁμαρτίας)』
엑스 에르곤 노무(ἐξ ἔργων νόμου)는 율법의 일로부터 라는 의미다. 사륵스(σὰρξ)는 육신을 의미한다. 번역을 하면, 그러므로 율법의 일로부터 의롭게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육신이 그의 눈 앞에서 율법을 통하여 죄의 온전한 지식이 (있게 될 것이다). 에노피온 아우투(ἐνώπιον αὐτοῦ)는 그의 부릎 뜬 눈 앞에서 라는 것이다. 율법은 율법을 범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용도이므로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해서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에 의해 의롭다 함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라는 것이다.
에피그노시아(ἐπίγνωσις)는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경험을 통해서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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