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로마서 4장 1-3절『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의롭다 함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
창세기 15장 4-6절에『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람이 하나님 말씀을 믿는 것은 상속자와 자손에 대한 말씀이다. 상속자는 이삭(그리스도의 상징)이며, 자손은 이삭으로 나온 믿음의 선진들(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이다. 그런데, 아브람이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기의 의이다. 그것은 아브람의 육신의 생각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갑자기 아브람이 다른 말을 한다.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아브람은 결국 이렇게 믿음을 바꾸는 것이다. 처음에는 하인 엘리에셀이라고 했다가 이제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한다고 말을 바꾼다.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을 이행한다는 언약의 표증으로 할례를 하라고 하신다. 할례는 언약임과 동시에 자신이 하나님께 대하여 죽었다는 표현이다. 내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다. 로마서 4장 19절에서『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사도바울이 이렇게 표현한 것은 드디어 아브람이 100세가 되어서 이삭을 얻었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100세가 되어도 약속의 자녀를 준다는 것을 믿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은 것이다. 육신의 눈으로 볼 때 불가능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약속했으면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이다. 로마서 4장 22-25절『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이제 의는 그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된다.
성도가 하나님의 의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연합하여 죽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부활함을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도에게 부활생명을 주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세례의식을 통해서 이를 설명했다. 로마서 6장 4-5절『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성도가 부활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의에 이른다. 부활은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육체의 이전은 바로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예수님이 자신은 하늘로부터 왔다고 하셨다. 마찬가지로 성도 역시 하늘로 부터 온 영적 존재들이다. 육체를 입기 전에 이미 하나님 나라에서 존재했다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로마서 5장 14절에서『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모든 범죄한 영이 흙속에 갇혀 사람이 되었으므로 태어날 때부터 아담이 준 죄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고, 그 죄의 몸 안에 자신이 하나님 나라에서 지은 죄(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가 들어가 죄인들이 되는 것이다.
모세는 출애굽을 보여준다. 성도 역시 세상으로부터 하나님 나라로 탈출해야만 하는 것이다. 오실 자의 모형이란 오실 자의 복사판이라는 말이다. 첫사람 아담은 사람들에게 죄의 몸을 주기 위해 왔으며, 예수님은 첫사람 아담의 모습으로 죄의 몸이 죽기 위해 세상에 온 분이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룬 것이다. 그래서 예수와 연합하여 죽은 자는 그의 죄의 몸이 죽는 것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부활은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영적인 존재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활이다. 그래서 부활은 육의 부활이 아니라 영이 영의 몸을 입는 부활이 된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서『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부활은 지금 현재 일어나는 일이다. 에베소서 2장 5-6절『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이미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며, 하늘에 앉히었다고 한다. 육이 아니라 영의 몸을 의미한다.
이렇게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것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되지 않으면 여전히 죄인이며, 율법 속에 있는 자이며, 안식이 없는 자가 된다. 날마다 죄를 용서받아야 하고 예수의 피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은 단 한번의 피흘림만 있을 뿐이라고 한다. 히브리서 9장 27-28절『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이미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들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찾아오시는 것이다. 심령 속에 천국이 임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3장 2절『회개하라 천국(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이 가까이 왔느니라』천국이라고 번역된 것은 하늘 왕국으로서, 천국으로 번역된 바실레이아는 성도의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현재적 부활생명을 가진 자는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말이다. 이게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은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부활을 죽었던 육이 부활하며, 현재적으로 부활을 믿지 않는다. 이는 다 자기의 믿음, 자기의 의에 불과한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24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믿음이 오는 것은 바로 부활 생명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물과 성령으로 태어났다고 말을 한다. 물에서 육의 몸이 죽고, 성령으로 영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이 부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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