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83-85

 83문: 다음을 말해 보십시오.


답: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언젠가는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것인데 이 때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그분의 승천 시 본 모습 그대로 오실 것이라는 뜻이다.


산 자라는 의미는 부활생명을 받아서 영생하는 자이며,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우편에 앉은 자를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은 자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와 함께 계시고, 그의 심령 속에 재림하여 임재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이다. 이미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으므로, 심판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영적으로 죽은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은 거듭난 성도에게는 영생을 주시나, 예수 밖에 있는 자에게는 심판으로 다가갈 것이다.
 
84
문: 마지막 심판은 세상의 마지막에 있을 것인데, 왜 당신은 그 때에 어떤 사람은 살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죽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모든 사람은 한 번 죽을 것으로 명령되어 있지 않는가?


답: 바울은 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그 때 살아 남아 있는 사람들은 저들의 부패가 제거되기 위해서 또한 그 몸이 썩지 않는 것으로 되기 위하여 몸이 순식간에 변화될 것이라고 했다.


신도들은 마지막 심판에 썩을 몸이 썩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변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도는 이미 하늘에 앉히심을 받은 자이다. 이는 이미 부활생명을 받았다는 증거이다.


따라서 부활은 썩을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육의 몸을 죽고, 영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썩을 육체는 하늘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는 몸이 아니라, 세상에서 살아가는 몸이다. 이 육체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다고 신도들은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웨스트민스트 교리(질문 90)로 인함이다.


85
문: 그러면 당신은 이 변화가 저들의 최초의 본성을 제거하고 다른 상태로 살아나기 때문에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도 마치 죽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답: 그렇다.


신도들은 마지막 심판 때 부활할 것으로 믿고 있으며, 죽었던 몸과 영혼이 결합되어 신령한 것으로 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의 주체는 영이 아니라 몸과 영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활은 영이 육의 몸을 밧고, 영의 몸을 입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3-44절 고린도전서 15장 42-46절『죽은 자(네크론)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소마 프뉴마티콘)도 있느니라』


육의 몸은 옛사람, 즉 죽어야 할 육신(사르키)를 의미하며, 소마는 몸이다. 프뉴마티콘은 성령 또는 영으로 번역된다. 소마 프뉴마티콘은  영의 몸(새사람)이다. 세례는 옛사람은 죽고, 하늘로부터 오는 옷(장막)을 입고 원래대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결국 세례는 물세례(십자가에서 예수와 연합하여 죽고)와 성령세례(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로서, 세상에 온 범죄한 천사의 영이 하늘의 옷을 입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 부활이라는 말씀이다. 


고린도전서 15장 51-52절에서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코이메데소메다)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호 네크로이)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라고 말을 한다.


사도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과 산자의 부활을 말하고 있다. 영적으로 죽은 자의 부활은 심판의 부활로, 영적으로 산자의 부활은 생명의 부활로 나아간다. 그리스도 이전에 죽은 자 중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있던 믿음의 선진들은 생명의 부활로, 그렇지 못한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가게 된다. 이 부활은 마지막 심판 때 일어난다. 그러나 살아있는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현재적 부활로 나타난다.


현재적 부활은 육적 몸(싸르카)이 죽고, 영적인 몸(소마 프뉴마티콘)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로 인해서 영의 몸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성도 역시 살아있을 때, 마지막 때를 만나면, 부모로부터 받은 육은 사라지고, 영의 몸으로 홀연히 변화된다는 말이다.


고린도전서 15장 53절에는『이 썩을 것(프다르톤)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아프다르시안)을 입겠고 이 죽을 것(드네톤)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프다르톤(φθαρτν)은 그리스도가 없는 육의 몸은 심판으로, 아프다르시안(φθαρσαν)은 죽지 않는 심판의 부활로 나아간다는 말이다. 이 심판의 부활은 마지막 때까지 기다리게 된다. 드네톤(θνητν)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가 부모로부터 받은 육이 죽은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나아간다. 이는 영의 몸을 입고 낙원으로 들어간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라는 말을 기억해야만 한다. 부활과 구원은 결국 죽어있던 영을 살리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영이 살아나는 것이 부활이요 구원이다. 다만 영이 살아나므로 영이 옷을 입는데, 그 옷이 거룩한 영의 몸이라는 말씀이다. 이는 육체의 몸이 변화되어 영의 몸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는 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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