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361-369
361문: 그러면 우리의 연약함(불완전함)은 우리가 성찬에 참석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는 것인가?
답: 그렇다. 만일 우리가 연약하지 않다면 성찬은 우리에게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이다. 즉 성찬은 우리의 연약함에 대한 보조수단으로 또한 동시에 위안을 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성찬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참여하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 무결한 자가 됨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의식이 된다. 육의 눈으로 상도를 바라보지 말고, 영의 눈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라보아야만 성찬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성찬의 의미는 세례받은 자에게 나타난다. 세례는 불완전한 육의 몸은 예수와 함께 죽고, 완전한 하늘로 부터 오는 부활생명의 몸을 예수와 함께 입었으므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 불완전한 자라고 믿는 자는 성찬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함을 인정하지 않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의 몸이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완전한 자가 된다.
362문: 이 두 가지 성례들은 또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가?
답: 예, 다른 목적이 또 있다. 이것들은 우리의 신앙고백의 외적인 표현이며 또한 표시가 되는 것이다. 즉 우리는 이것들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에 소속되었다는 것과 또한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려면 죄의 몸이 십자가의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것을 믿어야 한다. 신도가 현재적 부활을 믿을 때, 하나님이 세례로 옛성전을 무너뜨리고(불세례), 새성전을 세워주신다(성령세례). 그래서 새성전에서 성도가 재림하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면, 비로소 그 분이 성도의 구주가 되는 것이다.
363문: 성찬에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답: 우리는 그런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려고 하지 않고 침묵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찬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세례의 의미를 모르며, 세례의 의미를 모르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신도들은 성찬에 참여하게 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성찬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364문: 이 두 성례는 한 번 받고 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인가?
답: 세례는 단 한 번만 받도록 명령하셨기 때문에 반복해서 받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성찬은 계속적으로 받을 것을 명령하셨다.
세례는 하나님 백성이 되는 의식이며, 성찬은 하나님 백성이 된 것을 기념하는 의식이다. 하나님 백성이 되는 의식인 세례는 단 한번으로 족하지만, 성찬은 그것을 기념하는 의식이므로 횟수에 상관없이 참여하는 것이다.
365문: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답: 세례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교회 안으로 인도하여 처음 영접해 주신다. 그러나 일단 영접해 주신 후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를 영적 양식으로 먹여 주시겠다는 의도를 성찬을 통해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다.
세례를 통해, 신도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물에서 죄의 몸이 죽고,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영원한 부활생명의 몸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부활생명이 없는 자는 하나님 백성이 되지 못한다. 육체가 죽어서 언젠가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신도들은 아직 하나님 나라 백성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거듭나지 못한 신도들에게는 임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는 자들이다. 성령은 부활생명을 받은 자에게만 역사하신다.
366문: 세례를 베푸는 일과 성찬을 집행하는 일은 누가 행하는 것입인가?
답: 그것은 교회 안에서 설교하도록 공적으로 직무를 맡고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말씀을 증거하는 일과 성례를 시행하는 일은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례와 성찬을 집행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서 하는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집사들도 세례를 준 사례가 있다. 다만 그 동안 개신교에서는 교회 안에서 설교하도록 공적으로 직무를 맡고 있는 자가 해왔으므로, 공적 직무를 맡은 자가 목사이든, 장로이든 집행하면 될 것이다.
367문: 이것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있는가?
답: 있다. 주님께서는 세례를 베푸는 일과 설교하는 일을 특별히 당신의 사도들에게 위탁하셨다. 그리고 성찬도 마찬가지로 사도들에게 예수님 자신의 모범을 따라서 이를 행하도록 명령하셨다.
마태복음28장 19절「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누가복음22장 19절「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사도들은 또 다른 제자들에게, 그 제자들은 또 다른 제자들에게 위임하여 집행해 온 것이다.
368문: 그런데 성례를 집행하는 목사들은 아무런 구분도 없이 참석자들 모두에게 성례참여를 허락해야 하는 것인가?
답: 세례는 계층과 관련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른이나 어린이나 구분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성찬에 관해서는 목사는 성찬 받기에 전혀 불합당한 사람에게 성찬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세례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침례(또는 물뿌림)의식인데, 분명히 구분이 있어야 한다.
첫째 성인들에게는 회개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정확히 깨닫고 받아드리는 자가 세례를 받을 수 있다. 단순히 예수를 믿는다는 전제하에서 세례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다.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바로 죄인 자신임을 고백하며, 그래서 현재적으로 예수와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둘째, 아이에 대해서(유아세례)는 하나님이 신명기 1장 39절「또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당시에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던 너희의 자녀들도 그리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들어가려던 백성들이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에 들여다 보내고, 그 열두 정탐꾼이 돌아와서, 열 정탐꾼은 들어가면 다 죽는다고 말하며, 그 말을 듣고 온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여, 하나님이 두 정탐꾼이었던 여호수아와 갈렙과 출애굽 당시 어린아이들을 살려두고 가나안으로 들여 보낸 것이다. 그 이유는 아이들은 선악을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이 결정하시지,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세례라는 의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례의식에 참여하는 자의 마음이 중요하며, 어린아이는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므로, 아이들에게 세례의식은 큰 의미가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악을 분별하지 못한 어린아이에 대해서 그렇게 은혜를 베푸는데, 사람들은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에 대해서도 세례의식을 통해서 장차 구원받을 자라는 것을 미리 선포하겠다는 것이다. 유아세례는 율법주의의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369문: 왜 그런가?
답: 그것은 성찬을 모독하며 더럽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성찬에 합당하지 못한 자들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그들이 죄를 먹고 마시는 결과가 된다고 성경은 말한다. 죄를 먹고 마시면, 죄로 부터 자유함은 커녕 죄를 가중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