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370-373
370문: 하지만 가롯유다가 제 아무리 악했다고 해도 우리 주님께서는 성찬 때 그를 참여 하도록 하시지 않았는가?
답: 그이 죄는 아직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 비록 우리 주님께서 이를 모두 알고 계셨을지라도 모든 사람에게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만찬을 하시고, 떡과 포도주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누가복음 22장 16-20절「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유대 지도자들에 의해 체포당하고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셨다. 이때 열두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심지어 베드로는 예수를 세번이나 부인했으며, 가롯유다는 목어 자살해버린 것이다.
당시에 예수님은 부활하시기 전이었으므로, 모든 제자들은 성령세례를 받은 상태가 아니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가셔서 그들에게 성령세례를 주시고, 세례에 대해서 설명하시고, 모든 제자들에게 온 천하를 다니며 세례를 주어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 것이다.
따라서 그 당시 예수님이 베푼 만찬은 오늘날 성찬식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오늘날 성찬은 세례의 기념식과도 같은 의미를 갖지만, 예수님 당시의 성찬은 기념식이 아니라, 바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적 성격을 띤 식사자리였던 것이다.
371문: 그러면 거짓 위선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 목사들은 이들을 성찬 받기에 합당치 않은 자로 여겨서 성찬시에 금지 시킬 수가 없다. 다만 주님께서 이들의 사악함을 외적으로 드러내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1장 26-29절「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성찬에 참여할 것인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는 신도가 스스로 판단해서 할 일임을 성경은 말한다. 거듭나지 않은 신도가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죄를 먹고 마신다고 말을 한다. 어짜피 거듭나지 않은 자는 율법에 따르면 죄인인 것이다. 죄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심판하실 일이다.
372문: 그러면 목사가 성찬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들을 친히 알고 있다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발을 받았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 이 경우에도 충분한 증거나 교회의 공적 재판을 통해서 판결이 없을 때는 이들을 성찬에 금지 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죄의 문제는 하나님이 하실 일이며, 비록 신도가 잘못을 저질렀지만, 이후 회개하여 돌이킬 수도 있으므로 목사는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스스로 회개의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성찬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세상의 죄와 연관된 것이 아니다. 예수와 함께 죽지 않은 자는 모두 성찬에 합당하지 않으며, 예수와 함께 부활한 것을 믿지 않는 자도 역시 합당하지 않은 자인 것이다.
373문: 그렇다면 이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 어떤 규율이나 담당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답: 교회가 잘 관리되려면 이런 질서와 규율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잘못들을 감시하기 위해서 감독자를 선출해야 한다. 이들은 교회의 공적 권위를 소유하고 성찬에 전혀 참석할 수 없는 부도덕한 자들과 또한 성찬을 받는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교우들을 실족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자들은 성찬에 참여 하지 못하도록 금지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성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세례받은 자에 대한 기념식과 같은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물에서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것을 기억하게 하여,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은 자, 하늘로부터 부활생명으로 태어난 자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성찬식은 세상죄와 싸우게 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이미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은 자임을 기억하는 자리이다. 거듭난 자가 세상죄를 지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죄는 법에 근거한다. 즉 율법에 근거하는 바, 하나님은 로마서 8장 1-2절에서 거듭난 성도에게 다시는 율법에 따라 죄를 판단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거듭난 자는 죄에 대해서 죽은 자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목사나 신도들이 율법에 따른 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죄를 지을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거나, 다른 신도들에게 죄의식을 주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도 역시 육체를 가지므로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온 힘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용서하시는데, 인간들은 죄의 문제에 대해서 감독자를 선출하고 질서와 규율을 만든다면, 정말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자가 될 것이다. 이것은 율법주의 사고에서 나온 말이 된다.
신도가 죄를 짓는다면, 그는 여전히 거듭난 신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목사들은 그에게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야지,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 가르치고 규약을 만든다면 기독교의 의미를 모르는 목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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