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디모데전서 1장 8-11절『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하나님이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고, 그것을 지키게 명령하셨다. 그러나 백성들은 완벽하게 율법을 지킬 수 없었다. 그래서 동물의 희생제사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계속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지킬 수 없는 율법을 백성들에게 주신 이유는 너희들은 도저히 율법을 벗어날 수 없는 죄인들이라는 것이다. 율법의 계명을 지키려고 하는 그 이전에 죄를 짓게 하는 탐욕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 탐욕이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며,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벌어진 원죄인 것이다.
에덴동산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며,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기 전에 이미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탐욕이 있었던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통해서 그것을 발견했어야 하는데, 그녀는 발견하지 못하고 그것을 먹었다. 즉 하나님 처럼 되고 싶은 마음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탐욕의 마음을 숨긴채 계명을 지키면 죄가 아니라는 생각에 젖어있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죄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라는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닫고, 율법으로는 도무지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 자는 동물희생 제사를 통해서 장차 오실 여인의 후손을 바라보았어야만 했다. 하나님이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인의 후손을 약속하셨는데, 그들은 기억조차 하지 않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땅에 오셨을 때도 그들은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율법은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정말 좋은 소식이 된다. 율법 속에 영광의 복음이 있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1장 12-14절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피스톤) 여겨 내게 직분(디아코니안)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아그노온)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충성되이는 헬라어 피스톤(πιστόν)으로 신실하게 라는 의미다. 디아코니안(διακονίαν)은 섬기다 라는 의미다. 신자를 섬기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목사들은 신도들에게 섬김을 받으려고 한다. 목사가 신자를 섬겨야지 신자가 목사를 섬기면, 교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복음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데서 나타나는 이상한 현상인 것이다. 바울도 믿음이 없었을 때는 신성모독하는(블라스페몬 βλάσφημον)자요 박해자요 폭행하는 자였다고 고백했다. 바울 자신도 복음의 진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복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아그노온(ἀγνοῶν)은 복음을 알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 안에 있을 때 주어진다는 것이다.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믿음이다. 사랑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하여 죽었던 영을 살리는 것이다. 그것이 은혜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잘되고 복받는 것이 은혜가 아니라 죽었던 영을 살리는 것이 은혜다. 하나님은 믿음과 사랑과 은혜가 동시에 이루어지기를 원하신다.
디모데전서 1장 15-17절『미쁘다(피스토스 호 로고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미쁘다(피스토스 호 로고스)는 말씀이신 주님은 신실하다(믿음직스럽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사도바울은 정말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자신이 죄인 중에서 괴수라는 인식이 있어야 함을 말해주신다.
사도바울이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인간들은 죄인들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지만, 자신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데 앞장섰다는 것이다. 자신은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일체 오래 참으심으로 자신을 긍휼로 입혀 주셔서 영생을 얻은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해 주셨다고 고백한다. 휘포튀포신(ὑποτύπωσιν)은 모델과 같은 의미다. 바울의 모델을 통해서 신자들은 바울과 같은 고백과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께 긍휼을 얻어야만 하는 것이다. 고백과 회개는 자신도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도바울은 지금 자신이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며 돌이켜 보니 긍휼로 입혀 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목회해 왔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1장 18-20절『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 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아들 디모데야』라고 사도바울은 부르며 디모데를 몇가지를 부탁했다. 먼저 디모데에게 하는 말씀으로 시대를 해석하는 능력을 통해 헛된 말에 유혹당하지 말고 당당히 싸우라고 명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시대에 따라 적용되는 대상이 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지혜롭게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구원의 개념도 시대에 따라 변질되어 왔다. 오늘날에는 회개하라는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예수믿으면 구원받는다 라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회개없는 구원은 없는 것이다. 회개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죄악으로부터 돌이키는 것이다. 말로만 회개하고 죄악으로부터 돌이키지 않으면, 회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살피며 선한 양심과 믿음을 지킬 것을 부탁했다. 그리하여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처럼 헛된 말과 믿음 없는 양심으로 사탄에 끌려가지 말라 권면한 것이다. 선한 양심으로 번역된 것은 원어를 통해서 볼 때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믿음이다.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통해서 오늘날 목회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다. 헛된 말에 유혹당하지 말고 싸우며,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믿음 속에서 목회를 해 나가라는 것이다. 헛된 말들은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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