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디모데전서 2장 1-2절『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바울은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2가지 신앙의 권면을 하고 있다. 먼저, 기도에 대해 말했다. 바울은 기도를 언급하며, 간구(데에세이스 δεήσεις)와 기도(프로슈카스 προσευχάς)와 도고(엔튜세이스 ἐντεύξεις)와 감사를 언급했다.
데에세이스는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다. 프로슈카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도고라고 번역된 엔튜세이스는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를 의미한다. 중보기도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중보자를 통해서 기도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중보기도라고 말들을 하는데, 잘못된 표현이다. 그 사람을 대신해서 기도하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며,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대신이 아니라, 합심기도인 것이다.
특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셈노테티 σεμνότητι)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셈노테티는 위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당시 교회는 로마 제국의 위협아래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이유가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함이라고 해서, 이런 생활 자체가 목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복음이 목적인 것이다. 전쟁이 나서 시끄럽고 혼란되면 복음에 지장이 생긴다. 교회를 통해 복음이 전해지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2장 3-4절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기도의 대상에 대해 모든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왜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바울은 설명한다.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인데, 이유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종, 학력, 지위, 신분등과 무관하게 차별없이 베풀어지는 은혜다. 그래서 하나님의 원하심은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차별없이 모두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더욱 풍성해져 가는 것이다.
바울은 바로 유일한 중보자되시며, 복음이 되신 그리스도를 모두에게 증거하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차별없이 모두에게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원하심은 차별없이 모두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더욱 풍성해져 가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인의 기도 대상은 당연히 모든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2장 5-6절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왜 예수님이 모든 인간을 위해 대속물로 죽으셨는지를 말하고 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재자(중보자)가 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과 죄인은 만날 수 없으나, 중재자를 통해서 하나님과 죄인이 화목해지는 것이다. 카이로스(καιροῖς)는 하나님의 때를 의미하며, 그 하나님의 때(구원이 이루어지는 때)에 그 증언(마르튀리온μαρτύριο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원에 대해서 교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예수를 믿기로 하고, 영접기도를 받으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결정하시는 것이지 인간들이 그렇게 선언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도 신도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이다. 사람은 다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오직 하나님께 회개하는 일 외에는 할 것이 없다. 회개는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야 할 자라는 것을 깨닫고 십자가의 예수님과 연합되는 것이다. 구원은 사람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안가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인간들이 죄인이 되었으므로 죄에 대해서 죽는다 라고 이해한다면, 죄의 근원을 모르는 것이다. 죄의 근원(원죄)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처럼 되고 싶어서 탕자의 비유에서 처럼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들어온 것이 죄라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죄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것이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직접 죽을 수 없다. 그래서 죽음의 중보자를 내세우는 것이다. 그 중보자와 연합될 때 하나님이 죄인을 죽은 자로 여기시겠다는 것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고 말했다.
디모데전서 2장 7-8절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
여기에서 믿음(피스테이πίστει)과 진리(알레데이안ἀλήθειαν)라는 말이 등장한다. 믿음은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지식으로 어떤 사실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속으로 들어가는 믿음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믿음과 진리 안에서(그리스도 안에서) 사도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하고 있는 또 다른 한가지가 있다. 바로 예배시 남자와 여자가 가져야 할 바른 품행과 기본 질서에 관한 것이다. 예배시 먼저 남자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권면했다. 당시 교회에서 기도자는 일어서서 양손을 들고 기도하던 것이 보편적인 관례였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기도가 손을 드는 외적인 모습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고 말하면서 바로 내적이고 영적인 태도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서서 두손을 들고 경건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기도하고 나서 예배 후에는 언제 기도했냐는 듯 기도와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그런 삶으로,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동시에 분노하는 마음으로 논쟁하듯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직한 마음으로 자신을 잘 살피며, 정결한 생활로 또 나눔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으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지적대로 경건한 기도생활을 위해서는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임을 기억하여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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