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히브리서 7장 13-15절『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예수님도 레위지파에서 온 것이 아니라, 유다지파에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 사역하시는 것은 율법에서 정해놓은 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고 말을 한다.


히브리서 7장 16-17절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아카탈뤼투) 생명의 능력(뒤나민)을 따라 되었으니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아카탈뤼투(ἀκαταλύτου)는 줄이 느슨해지지 않는 이라는 의미다. 뒤나민ύναμιν)은 신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육신에 속한 계명의 법을 따르는 것은 율법주의, 인본주의 등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적인 능력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히브리서 7장 18-19절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계명은 율법주의를 의미한다. 율법과 율법주의를 잘 구분해야만 한다. 율법 속에는 그리스도가 숨어있지만, 율법주의는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유대인들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율법주의는 구원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무익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폐하여져야 한다.


소망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율법주의로서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7장 20-22절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맹세는 신명기 29장 1절에서『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모압 땅에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은 이러하니라』


그리고 29장 13-14절에서『네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에 참여하며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하시는 맹세에 참여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또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대로 오늘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그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시려 함이니라.』


언약은 시내산(호렙)에서 모세를 통하여 옛사람에게 명령하였고, 새언약은 모압 땅에서 모세를 통하여 새사람에게 명령했다. 그런데 이 맹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것이다. 따라서 맹세는 언약과 새언약 이전에 하신 명령이 된다. 결국 모압 땅에서 하신 새 언약은 근본적으로 이 맹세를 근거로 하신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7장 23-25절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토 엔팅카데인)』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영원히 사시는 분이므로, 제사장직도 변경되지 않는다. 토 엔팅카네인 ντυγχάνειν)은 중보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중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 중보는 대속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교회 사람들은 쉽게 중보라는 말을 한다. 합심기도를 중보기도라고 사용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7장 26-27절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그래서 이 분이 중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보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톤 우리논은 성도들의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죄의 문제를 한꺼번에 다 해결하신 것이다. 그런데, 교회 사람들은 원죄만 해결되고, 세상죄는 앞으로 계속 지을 수 있으므로,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믿는 자들도 있는 것이다. 이 생각이 바로 율법주의, 인본주의라는 것이다.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은 희생제사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하심을 받았다. 율법주의는 계명을 통해서 자기가 지을 수 있는 죄를 생각하고, 인본주의는 자기 생각을 바탕으로 십자가의 대속을 판단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의 모든 죄를 사해주신다.


히브리서 7장 28절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맹세의 말씀은 호 로고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새언약이시다.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자가 새언약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에서 멜기세덱처럼 떡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누가복음 22장 20절에서『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거듭난 자가 새언약을 붙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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