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히브리서10장 7-10절『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시편 40편 6-8절『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시편 40편은 양치는 소년에 불과했던 다윗은 하루아침에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그의 인생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고 초대 왕인 사울의 질투와 욕망으로 인해 목숨이 경각에 달하는 수많은 역경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셔서 그는 결국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등극했다.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다윗의 감사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이 고난 중에 있으니 자신을 구원해달라는 것이다. 다윗은 현재 고난과 역경 중에 있지만, 과거에 자신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상황에서 구원해주실 것을 믿고 간구하고 있다.


다윗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토로하고 있다.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데, 세상은 자신을 향해 칭찬하기보다는 조소와 비난, 그리고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 있다 보니 다윗 속에 있는 죄성이 다시 꿈틀거리기에 『아직도 내가 이 정도 수준밖에 안되는구나』라며 낙담한다.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제사와 예물이 아닌 말씀을 삶을 통해서 실현해나가는 것을 원하셨는데, 다윗 자신은 그러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자신을 구원해주실 것을 간구드리며, 말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구약시대는 제사를 드리는 곳이 예루살렘 성전뿐이었다. 하루에 드리는 제사도 시간상 한정되어, 죄인들도 제사를 드리고 싶어도 다 드리지 못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사드리는 곳이 더 많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사를 통해서 그들이 죄인임을 알려주실 뿐, 더 많은 제사와 제물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 사람들이 건물을 성전이라고 생각해서, 성전을 계속 지어서 확장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때, 성전의 의미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 제사를 드리는 곳이 되는 것이다. 이제 교회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 모이는 그런 곳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부활생명으로 거듭나서, 그들이 모여 그들의 심령에 임재하신 호 로고스를 함께 찬양하며, 그 분의 말씀을 듣고, 서로 교제하는 것이다.


백성들이 동물들의 피로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사를 드리지만, 그들 마음 속에 있는 죄성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죄인들은 율법을 통해서 계명을 어기는 것을 죄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사를 드리면, 그 죄를 용서를 받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계명을 어기기 전 단계인 탐심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오늘날 신도들은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을 죄로 여긴다. 그러나 죄의 근원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과를 바라보는 탐심의 마음이다. 보기에 탐스럽고, 먹음직하다는 것이다. 죄의 근원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다. 하나님은 제사를 통해서 그 원죄를 발견하고, 여인의 후손인 약속의 씨를 발견하라고 하시는데, 대부분 유대인들은 그 약속의 씨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내가』 라고 하는 1인칭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 라고 번역된 주는 성부 하나님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께 말씀하고 있는 내용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다는 말은 죄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러 왔다는 것이다. 동물의 피가 아니라, 단번에 십자가에서 드리는 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겠다는 것이다.


첫째 것은 제사장이 드리는 제사를 폐한다는 것이다. 교회공동체 건물이 제사를 드리는 성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전은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듣는 자리인데, 신도들은 제사를 드리고 있으면서(죄를 용서받기 위해 예수의 피를 요구하는 행위), 제사를 폐하고 예배만 드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상 구약의 율법 속에 있는 것이다.


둘째 것은 말씀이신 호 로고스(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호 로고스를 세운다는 말은 성도의 심령 가운데,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인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죄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로마서 6장 7-8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는 심령 속에 세성전이 세워지고 호로고스가 임재하는 것이다.


시편의 사례와 같이 다윗을 괴롭히는 죄의 근본은 자신 속에 꿈틀거리는 죄성이다. 오늘날 성도에게 가장 큰 적은 다름 아닌 그들 속에 있는 탐욕이라는 자아를 의미한다. 이것은 바로 범죄한 천사의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인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탐욕이 사람들 마음 속에서 끝없이 죄를 불러 일으키며,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게 사람마다 육적 자아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의 피와 부활생명을 통해서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라고 하는데, 마음 속의 탐욕은 끝없이 하나님을 대항하며, 성도를 괴롭히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15절에서 거룩한 곳에 가증한 것이 선 것을 보거든 산으로 도망할지니라 라는 말이 있다. 거룩한 곳은 심령 속의 성전이다. 가증한 것은 바로 A.I. 라는 말이다. 심령 속에 이것들이 자리잡고 있지만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빨리 산(호 로고스)으로 도망하라는 것이다. 그들은 옛성전을 차지하고 있으나, 호 로고스가 계시는 새성전으로 가면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게 영적 전쟁인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함께 연합한 성도는 옛사람(옛성전)이 죽었다고 믿지만, 여전히 견고한 지처럼 살아있는 것이다. 옛사람이 죽었다고 믿는 것은 자아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 주기 위함이다. 성도의 정체성은 옛성전의 자아가 아니라, 새성전의 호로고스라는 것이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거룩함을 입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된 결과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되어 현재적으로 부활생명을 가진 자가 바로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호로고스가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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