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구약 인용)
히브리서 10장 15-18절『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아페시스)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
하나님이 거룩하게 된 자에게 새언약을 맺으신다. 새언약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새언약은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한 자가 참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심령 가운데, 호 로고스가 임재하게 되고, 성도의 영도 그 심령 속에서 호 로고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에스겔 11장 19-20절『내가 그들에게 한(에하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샤다쉬)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새 영을 주다에서 샤다쉬는 다시 세우다, 새롭게 하다,
수선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에하드는 통일된, 첫째의
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바벨론 포로 중에는 자신들의 신앙을 지킨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성전을 재건하게 하셨다. 표면적으로는 무너진 돌 성전이 되지만, 영적으로는 심령 속의 새성전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태어날 때부터 성전을 주셨는데, 성전이 우상숭배(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죄악)로 인해 타락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바 된 것이다. 그래서
이를 옛성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 당시 지도자적인 위치에 있는
자들이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 숭배를 하였지만 하나님은 이들의 은밀한 죄를 아시고 폭로하시며 그들의 죄악이 예루살렘 성읍을 패망으로
이끈 원인임을 증거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하지 못하고 평안의 때로 간주하던 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안전하고 평안하다고 믿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이 안전하다고 믿고
있던 것들을 헛된 것으로 만드셨다. 언약 백성답게 살지 못했던 그들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이방인들을 통해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이미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그곳 이방인들의 풍습과 규례를 좇지 말 것을 율법으로 엄숙히 명하셨다(레 18:3). 그러나 이스라엘은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스스로 불의를 자행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였던 것이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은 이방의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향하여 업신여기고 조롱했다. 자신들은 행위가 의롭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에 남겨지게 된
것이고, 바벨론 포로 된 자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 중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훌륭한 신앙인들이 고난 속에서도 자신들의 신앙을 지켰다. 신앙을 지킨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직접 성소가 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하나님의 법은 성령의 법이다. 부활생명을 가진 자는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는데, 이를 성령의
전이라고 한다. 성령의 전에 생명책이 있어,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0장 12절『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심령 속에 생명책이 없으면, 율법의 책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가 된다. 구약의 성소에서도 언약궤 안에 두돌판(율법
책)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죄인들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을 떠난 죄를 깨닫고 돌아오는 자만 생명책을 주시는 것이다.
신명기 30장 6절『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하나님은
마음의 할례를 말씀하신다. 마음의 할례는 마음에 새긴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율법과 복음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마음의 할례를 말하고 있다.
로마서 2장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엔 사르키 페리토메)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페리토메 카르디아 엔 프뉴마티)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엔 사르키 페리토메(ἐν σαρκὶ περιτομή)는 육신 안에 할례를 의미한다. 페리토메
카르디아 엔 프뉴마티(περιτομὴ καρδίας ἐν πνεύματι)는 성령 안에 마음의 할례이다. 부활생명을 받은 자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원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물에서 율법에 대해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로마서 8장 1-2절에서 같은 말을 하고 있다.『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부활생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은 영을 살리기
위해 사역을 위함인데, 사역을 하다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실수가
있더라도, 하나님은 그 실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무조건 믿어야 한다. 그러나 성도는 복음 전파를 위해서 영적 성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영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영적으로 갖난 아기에서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 이는
거룩이나, 성령이나 성화와 다른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주실 때 이미 거룩하다 인정해 주신다. 왜냐하면 옛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여전히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난
영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할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것들을 사하셨은즉(아페시스)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아페시스(ἄφεσις)는 종의 상태에서 해방된 것을 의미한다. 종에서 해방되었으므로, 다시 값을 주고 종을 산다고 말을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죄로부터
해방된 자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날마다 제사를 드리는 것과 같이 날마다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하는 자들은 여전히 죄의 종이 되어 있는 자들인 것이다. 즉 율법 아래 매인바
되어 있는 자들이다. 갈라디아서 3장 21절에서 처럼, 율법에 대해서 죽지 않으면, 죄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율법에 대해서 죽는 자가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연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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