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히브리서 10장 19-20절『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사륵스)니라』

하나님은 예수의 피로 단번에 죄인을 사탄으로부터 끄집어 내어 죄로부터 자유함을 준다. 이 피가 역사하기 위해서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믿는 자들이다. 죄의 그믈로부터 나온 자는 죄와 상관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다시 죄를 짓지 않는가? 요한1서 5장 18절에서『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여기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탐욕의 죄를 의미한다.

사탄이 노리는 것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말로 계속 유혹하는 것이다. 이 탐욕이 원인이 되어 짓는 모든 죄가 바로 하나님이 미워하는 죄인 것이다. 탐욕이 원인이 된 죄로 인하여 영이 죽인다. 탐욕을 부추겨서 이웃의 영을 죽이게 하는 자들도 죄인이다. 이들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영을 죽이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죄의 문제의 중심에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과 그로 인한 영의 죽음이다.

오늘날 세상 교회는 계명을 어기는 것을 죄로 여기므로, 세상에서 잘못한 것만을 죄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질서에 조금만 실수하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회개하여 예수의 피로 죄를 용서받으려고 한다. 죄의 근원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음으로 성도의 심령에 하나님 나라의 성소가 임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성도는 그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는다.

여기에서 길은 예수님이 말씀하신『나는 길이요 생명이라』고 하신 그 길이다. 휘장이 육체라는 것이다. 휘장은 율법주의의 종교의식을 의미한다. 이것이 찢어졌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의미가 바로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이며, 유대인들에게 율법적 종교심을 벗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성도의 심령 안에 임재하시는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21-22절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뿌림은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을 의미하며,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하며(피뿌림),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은 마음에 탐심이라는 우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지 않으면, 이 우상(옛뱀)이 죽지 않는다. 악한 양심은 탐심을 의미한다. 몸은 육의 몸이다. 탐심으로 얼룩진 죄의 몸은 예수와 함께 죽는다. 세례때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죽은 자에게 하나님은 모든 죄를 씻어주신다.

맑은 물로 씻음을 받는 것은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영의 마음이 작동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임재하게 되는 것이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소 앞 마당의 번제단에서 동물이 희생되고(제물과 연합됨:제사장도 죽었음), 물두멍에서 손을 씻는다. 즉 죄인이었지만, 희생동물의 죽음과 연합되고, 물로 씻으므로 거룩한 자로 다시 태어나 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은 성령을 의미한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메타 알레디네스 카르디아서 엔 플레로포리아피스테오스)은『믿음의 온전한 확신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라고 수정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이 마음이 베드로가 말하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과 같은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피뿌림은 강조되는데, 예수와 함께 죽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세례를 받는 이 과정은 설명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죄인이 죄용서만 받을 뿐,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것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23-25절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피스토스)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알렐루스) 사랑(파록 쉬스몬)과 선행(칼론 에르곤)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텐 에피쉬나고겐 헤아우톤)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약속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일이다. 피스토스(πιστὸς)는 신실하다는 의미다. 즉 약속을 분명히 지키시는 분이다. 확신이 생기면, 성도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분명한 소망이 생긴다.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텐 호몰로기안 테스 엘피도스τὴν ὁμολογίαν τῆς ἐλπίδος)는『그 소망의 고백을 하고』라는 의미다. 소망에 대한 고백을 자주 하라는 것이다.

알렐루스(ἀλλήλους)는 서로 관찰하라는 말이다. 파록쉬스몬(παροξυσμὸν)은 아가페의 사랑의 자국이다. 서로 아가페 사랑의 자국이 있는지 관찰해보라는 것이다. 아가페 사랑의 자국은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지는 것처럼 희생을 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성도 자신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로 예수의 죽음 속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칼론 에르곤(καλῶν ἔργων)을 선행으로 번역했는데, 칼론은 가치있는 일이다. 즉 성도 자신이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일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하는 일이다. 이러한 것을 중심으로 서로 관찰해서 서로 격려하면서 말씀을 나누라는 것이다. 이것은 성도 자신에게도 해당하고, 남을 전도해서 그렇게 되도록 되게 하는 것도 포함되는 것이다.

텐 에피쉬나고겐 헤아우톤(τὴν ἐπισυναγωγὴν ἑαυτῶν)은 주님과 함께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들이 함께 모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나가는 것을 저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과 함께 한다고 말을 하면서, 어떤 일이 있을 때, 주님과 함께 하지 않고, 혼자서 일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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