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
신명기 11장 16-21절「너희는 스스로 삼가라(샤마르)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파타) 돌이켜(수르) 다른 신들을 섬기며(아바드) 그것에게 절하므로(샤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의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과 같으리라」
샤마르는 울타리를 치다, 지키다 라는 의미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간직하라는 것이다.
파타는 속이다, 과장하다, 열다, 단순하다의 의미가 있다. 이프테(יִפְתֶּ֖ה 기본형은 파타)는 수동형으로서 미혹당하며 라는 것이다. 미혹당하는 것은 사탄에 의해 미혹당하며,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 나라로 마음이 향하는 것이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세상이 주는 복이 현실적이며,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마음에서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가나안 땅은 세상의 한 부분이지만,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가나안 땅에 하나님 나라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있지 않지만, 오직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따라 그렇게 믿는 것이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성막을 세우고, 말씀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수르는 쫒아버리다, 기울다, 떠나다 라는 의미가 있다. 아바드는 경작하다, 노예의 신분이 되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샤하는 엎드리다, 복종하다 라는 의미다.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므로 하나님을 떠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샤마임)을 닫아 비(마타르)를 내리지 아니하여” 샤마임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며, 비는 궁창 위의 물로서 생명의 말씀이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부활생명이다. 부활생명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다.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부활생명이 없으므로, 생명나무의 열매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화과 나무의 비유에서 처럼 나무가 베어지는 것이다. 엣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없으며, 오직 선악지식나무 만이 존재한다. 생명나무의 열매가 없으므로 자신이 주인인 것이다.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레바브)과 뜻(네페쉬)에 두고(카샤르)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야드)에 매어 기호(오트)를 삼고 너희 미간(토타포트)에 붙여 표를 삼으며”
레바브는 레바브에서 유래되었으며, 집중하다, 에워싸다 라는 것이다. 네페쉬는 영어로 soul로 번역되어 개역개정은 뜻으로 번역했다. 네페쉬는 생명을 의미한다. 즉 영과 몸으로 나오는 모든 생각을 집중하여 라는 것이다.
카샤르는 묶다, 메다 라는 의미인데, 이것을 손목에 묶는 것으로 번역했지만, 마음으로 번역된 레바브와 뜻으로 번역된 네페쉬를 묶어 라는 것이다.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라는 말은 하나님 말씀을 영육간에 두고 라는 것이다. 영육간에 둔다는 것은 하나님이 첫사람을 창조하신 그대로의 사람에 둔다는 것이다.
첫사람은 죄의 몸을 사람들에게 전해준 그리스도이다. 골로새서 1장 15절「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하나님이 영육간(첫사람을 통해서)에 기억하라는 말씀은 창세기 3장 15절의 여인의 후손(메시야)에 대한 소망이다.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가나안에 들어가면, 메시야가 언젠가 오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라는 것이다.
“그것을 너희의 손목(야드)에 매어 기호(오트)를 삼고” 이 말을 다시 번역하면, “그들이 표적으로서 너의 손이 될 것이다” 메시야에 대한 소망은 백성들이 잡고 갈 지팡이가 되고 안내자가 될 것이다.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토타포트)” 토타포트는 이마에 붙인 장식을 의미한다. 히브리어를 보면, (לְטֹוטָפֹ֖ת בֵּ֥ין עֵינֵיכֶֽם׃) 르토우타포트(기본형은 토타포트) 벤(기본형은 바인) 에네켐(기본형은 아인)이것을 직역하면, 눈들 사이의 장식품이다.
이스라엘 남성들이 기도할 때 미간(이마)에 착용하는 검은색 가죽 상자는 테필린이라고 한다. 테필린은 토라의 말씀이 적힌 양피지 조각을 넣은 작은 검은색 가죽함인데, 테필린을 착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생각과 지성을 다스리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정통파 유대인 남성들은 주중 아침 기도 시간에 이를 착용했다. 이마 상자는 눈과 눈 사이 정 중앙에 위치하게 하여 끈으로 묶었다.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미간이라는 의미는 두 눈 사이이다. 눈은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와 성령을 의미한다. 이 말의 영적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의 영에 있으며 라는 것이다. 어떤 표시를 해서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밴)에게 가르치며(다바르) 집(바이트)에 앉아 있을(야사브) 때에든지, 길(데렉크)을 갈(할락크) 때에든지, 누워 있을(샤카브) 때에든지, 일어날(쿰)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라마드)”
밴은 가문을 세우는 아들, 민족 등의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는 자손들이라고 볼 수 있다.
다바르는 정돈하다, 말하다, 지명하다, 명령하다의 의미를 갖는다. 자손의 대표 즉 각 가정에서의 대표를 정해서 그들이 가족에게 말씀을 전하며, 가족이 항상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어떤 의식처럼 행해지면 안되는데, 그들은 의식처럼 행한 것을 볼 수 있다.
집에 앉아 있다는 말은 성전에 있는 것이다. 바이트는 집, 성전, 궁전 등으로 사용된다. 야사브는 (재판장으로서) 앉아있다, 거주하다 등의 의미이다.
데렉크는 하나님의 말씀의 도를 의미하며, 할락크는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
샤카브는 휴식하다, 머무르다, 잠자다 라는 것이다. 쿰은 일어나다 라는 말로서 둘다 영적으로 안식이 필요할 때나 영적으로 깨어있을 때나 라는 말이 된다.
라마드는 막대기로 찌르다, 교훈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또 네 집 문설주(메주자)와 바깥 문(샤아르)에 기록하라”
메주자는 문짝을 끼워 달기 위해 문의 양쪽에 세우는 기둥을 뜻하며, 성경에서는 유대인의 전통적인 종교 상징물인 메주자를 문설주에 부착하는 관습과 연관되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메주자는 구원과 언약을 상징하며, 문설주(세로 기둥), 문인방(가로 상단), 문지방(가로 하단)에 바르거나 새겨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는 의미가 있다.
문설주의 영적 의미는 출애굽기에서 어린양의 피를 칠하므로서, 재앙을 피하고 구원을 상징하는 보호와 구속의 표식였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원과 연결되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의미한다.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린양의 피를 대신할 영원한 속죄 제물인 메시야를 소원하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새아르는 문이라는 의미 외에, 문이 열리다 라는 의미도 있다. 마음의 문을 열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기억되며, 메시야를 소원하는 마음을 살도록 하라는 것이다.
“너희의 날(욤)과 너희의 자녀의 날(욤)이 많아서(라바) 하늘이 땅을 덮는 날(욤)과 같으리라” 다시 번역하면, “너희의 날과 너희 자녀들 안에서 날들이 많아서 땅위의 하늘의 날들과 같으니라” 땅위의 하늘(하나님 나라)은 너희나 너희 자녀들의 날과 같이 많아질 것이 다. 즉 사는 동안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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