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보다 먼저 길을 떠나라
백성보다 먼저 길을 떠나라
신명기 10장 6-8절「(이스라엘 자손이 브에롯 브네야아간에서 길을 떠나 모세라에 이르러 아론이 거기서 죽어 장사되었고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그를 이어 제사장의 직임을 행하였으며 또 거기를 떠나 굿고다에 이르고 굿고다를 떠나 욧바다에 이른즉 그 땅에는 시내가 많았으며 그 때에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 궤를 메게 하며 여호와 앞에 서서 그를 섬기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으니 그 일은 오늘까지 이르느니라」
브에롯 브네야아간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 여행을 할 때 머물렀던 곳이다. 민수기 33장 31-32절에 의하면「모세롯을 떠나 브네야아간에 진을 치고 브네야아간을 떠나 홀하깃갓에 진을 치고.」따라서 브에롯 브네-야아간이 브네-야아간과 동일한 장소였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명기의 기록은 이스라엘의 여행 방향을 민수기의 기록과 반대되는 순서로 언급하여 이스라엘 자손은 브에롯 브네-야아간에서 모세라로 출발하였다고 기술한다. 광야에서 여러 해를 보낸 사실을 고려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지방을 두 번 지나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아론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고 그 부근에서 일어난 일을 모세에게 회상케 하시는 말씀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브에롯 브네야 아간에서 길을 떠나 모세라에 이르러 아론이 거기서 죽어 장사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민수기 20장 26-29절에서는「아론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라 아론은 거기서 죽어 그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그들과 함께 회중의 목전에서 호르 산에 오르니라 모세가 아론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매 아론이 그 산 꼭대기에서 죽으니라 모세와 엘르아살이 산에서 내려오니 온 회중 곧 이스라엘 온 족속이 아론이 죽은 것을 보고 그를 위하여 삼십 일 동안 애곡하였더라」
먼저 아론의 옷을 벗기고, 그 이후에 아론이 죽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 아론이 대제사장의 옷을 벗고 죽었다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이다. 호르산과 모세라가 연관된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모리야 산에서 죽으셨다. 호르산은 율법을 상징한다. 엘르아살이 아론이 입었던 대제사장의 옷을 입은 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삼십일간 애곡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을 의미한다.
“또 거기를 떠나 굿고다에 이르고 굿고다를 떠나 욧바다에 이른즉 그 땅에는 시내(마임 나할)가 많았으며” 마임은 물이며, 나할은 개울이나 골짜기를 의미한다.
“그 때에” 그때 라는 말은 욧바다의 시내에 이른 때를 의미하는 것이다. 굿고다는 협곡으로서 물없는 곳, 즉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없는 곳이지만, 욧바다는 생명의 물이 있는 곳이다. 비로소 이곳에서 레위인을 구별하셨다. 이는 백성들이 앞으로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건너야 할 요단강을 의미하며,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성령세례를 받으신 것 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 역시 성령세례를 받게 된다. 출애굽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것은 물세례(십자가의 죽음)를 의미하지만, 요단강은 성령세례(부활생명)를 상징한다.
신명기 10장 9-11절「그러므로 레위는 그의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 같이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 내가 처음과 같이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렀고 그 때에도 여호와께서 내 말을 들으사 너를 참아 멸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서 백성보다 먼저 길을 떠나라 내가 그들에게 주리라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에 그들이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하셨느니라」
레위 지파가 다른 지파들처럼 땅을 분배받는 기업이 없으며, 레위 지파는 제사장 직분과 예배를 섬기며 하나님의 헌물로 살아가는 특별한 사명을 받았다.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을 분깃으로 받았지만, 레위 지파는 땅을 소유하지 못했다. 레위인은 제사장과 함께 예배를 섬기고, 율법을 가르치며, 하나님께 드려지는 화제물을 받으며 생활했다. 그러나 신약에 들어와서 모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모세는 두 돌판을 받는 장면을 상기시키면서, 처음 시내산에서 사십주야를 보내면서 두 돌판을 받았는데,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하나님이라고 숭배한 것을 보고, 두 돌판을 깨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이 두 돌판을 깍아서 가져오도록 명령하신바, 이 때도 사십주야를 산에서 있었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 때에도(파암) 여호와께서 내 말을 들으사(샤미) 너를 참아 멸하지(샤하트) 아니하시고” 파암은 걸음, 두번째 등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처음으로 진멸시키려고 하셨던 사건은 시내산 아래에서 발생한 금송아지 우상 숭배 사건이다.
모세가 두번째 돌판을 받으러 사십주야를 산에 머물 때, 출애굽기 34장 6-7절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알 수 있다.「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헤세드)와 진실(에메트)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나사 나짜르)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헤세드는 은총, 자비라는 의미다. 에메트는 진리, 진실, 세우다 라는 의미다. “인자와 진실이 많다” 라는 번역은 어색하다. 에메트는 앞뒤의 문맥으로 봐서 공의로 여겨진다. 인자와 진실이 많다는 것을 “사랑과 공의가 분명한 하나님이시라” 라고 번역함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으로서는 천대까지 베풀며, 공의로서는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영원하지만, 공의로서 징계는 그렇게 오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에 비하여 그 은혜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수사학적으로 표현한 구절이다.
베푼다(나사 나차르)에서, 나사는 베풀다, 용서하다, 나차르는 지키다, 보존하다(보호하다), 준수하다는 의미로 함께 사용되었다.
“악과 과실과 죄”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아논(악)과 페샤(과실), 챠타아(죄) 세 가지인데, 아논은 사악하다 라는 의미다. 악하다라는 의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를 의미하며, 페샤는 반역하는 죄를 의미한다. 반역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의미하며,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 이것을 용서하지만,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첫사람 아담으로 부터 죄의 몸이 대대로 전해지는 원리가 된다.
첫번째 돌판이 주어졌는데, 인간은 도무지 지킬 수 없음이 금송아지 사건을 통해서 나타났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넘치게 된다. 그게 두번째 돌판인 것이다. 그래서 두번째 돌판과 함께 여호와의 이름이 선포되는 것이다. 첫번째 돌판은 첫사람 아담, 죄에 대한 것이라면, 두번째 돌판은 마지막 사람 아담, 은혜에 대한 것이다. 첫번째 돌판은 십자가의 죽음이라면, 두번째 돌판은 부활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1장 17절에서『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마태복음 9장 13절에서『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서 백성보다 먼저 길을 떠나라” 백성들 앞에서 선두에 그들을 인도하라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를 견인한다. 그 분은 앞에서 나가고, 성도들은 뒤를 따른다. 이게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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