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9장 1-5절「이스라엘아 들으라 네가 오늘 요단을 건너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니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았으며 크고 많은 백성은 네가 아는 아낙 자손이라 그에 대한 말을 네가 들었나니 이르기를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 하거니와 오늘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영적으로 아낙자손은 다름아닌 내 속에 있는 옛사람을 의미한다. 요단강을 건넜다는 말은 성령세례를 받은 자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성령세례를 받고 곧 바로 사탄의 시험을 받은 것처럼, 성도가 세례받은 후에도 시험을 받는다. 아낙자손과 같은 옛사람(돌:육적 생명)을 새사람(떡:부활 생명)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4장 4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첫째 시험은 돌을 떡덩이로 만드는 시험이다. 여기서 말하는 돌은 율법을 의미하며, 떡덩이는 부활생명의 복음이다.

 

네가 오늘 요단을 건너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가돌 이르 민)로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니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샤마임)에 닿았으며 크고 많은 백성은 네가 아는 아낙 자손이라” 아낙자손에 대한 표현이다.

 

민은 …의 한 부분, 따라서(전치사), …에서부터, 위에, 뒤에 등의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너보다 강대한 나라에서 너라고 번역된 것은 한 부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번역을 해보면 네가 오늘 요단을 건너 크고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큰 성읍의 일부를 차지하리니”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샤마임)에 닿았으며(바짜르) 바짜르는 요새화하다, 억제된, 벽으로 막은 등의 의미다. 다시 번역하면, 그 성읍들은 요새화되고 하늘에 닿았으며이다. 샤마임은 하늘이지만,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기도 한다.

 

창세기 11장 4절「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바벨탑 사건으로, 여기도 하늘에 닿게 한다는 표현이 있다. 여기 하늘은 하나님 나라로서, 사람들이 스스로의 의를 통하여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의 표현이다.  

 

이름은 셈이다. 셈에 마임이 붙으면 샤마임(하늘)이 된다. 하늘의 아들들이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아들들인 셈의 후예들이 거짓 언어인 거짓 종교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어가 분열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기독교인들 중에는 인본주의, 율법주의로 변질된 종교작인 언어를 쏟아내고 있다. 바벨탑은 다름 아닌 이들이 쌓는 언어요 종교인 것이다.

 

바벨탑은 돌이 아니라, 벽돌로 지은 성이다. 바벨탑을 지은 자들은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강조하고 있다. 원래 돌로 성을 쌓지만 더 견고히 하기 위해 벽돌을 만들고, 흙대신에 역청을 사용하여 돌보다 더 단단하게 재료를 개발한 것이다.  자기의 의는 도무지 부숴지지 않는 단단한 돌과 같이 굳은 것이다. 이러한 자기의 의를 부인하는 것은 마치 십자가를 통과하는 것과 같은 어려움이 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로서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자기 이름을 내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이름이 참 이름이다. 창세기 12장 2절에서『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아브람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주셨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름은 받는 당사자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뜻이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 성경의 기본인데, 바벨탑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려는 모양이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의 표현인 것이다.

 

 크고(가돌) 많은(룸) 백성(벤)은 네가 아는 아낙 자손이라 가돌은 목소리가 큰, 위대한, 힘센 등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룸은 일어나다, 높이다, 칭찬하다 등의 의미다. 벤은 아들, 자손, 백성 등으로 사용된다. 다시 번역하면, “스스로 자신들이 크다 라고 생각하는 백성은 네가 아는 아낙자손이라” 이 아낙자손의 원류는 가인이고, 니므롯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백성을 의미한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맹렬한 불은 불세례이다. 하나님이 옛사람을 불세례로 태우실 것이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할 때도 불로 심판하셨다. 성령의 불은 태우기도 하지만, 새로 태어나게도 해 주신다.

 

누가복음 12장 49-50절『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구약에서 죄인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 희생제물을 성소에 가져오면, 죄인이 그 희생물을 죽이고, 제사장이 피를 제단에 붓고, 살을 제단에서 태웠다. 세례의식은 물세례, 불세례와 성령세례를 포함한다. 그런데, 의식을 행하는 것은 물에서 행하는 것이다. 비록 물에서 행하지만, 불세례도 함께 받는 것이다. 물세례는 죄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을 상징한다.

 

불세례는 죄의 몸에 대해서 죽음을 상징한다. 죄의 몸은 죄를 담는 그릇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죄의 몸과 죄가 죽는 것이다. 죄는 곧 사망인데, 사망이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물세례는 노아의 홍수 심판을 상징하고, 불세례는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상징한다.

 

아낙자손은 바로 불세례를 받는 자의 모습이고, 옛사람의 모습이며, 소돔과 고모라의 모습인 것이다.

 

마태복음 3장 11절에서『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예수님이 장차 불과 성령세례를 주신다는 것이다.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옛사람을 쫒아내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시며, 성도는 하나님께부르짖기만 하면 되는데, 성도가 어떠함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로마서 6장 6절에서 옛사람은 죄의 몸으로 표현된다. 죄의 몸은 악으로 규정된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있기 때문이다.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표면적으로는 그들이 하나님 백성을 공격하는 일이지만, 이면적으로는 옛사람은 새사람을 공격한다. 죄의 몸이 계속 성도를 영적 고통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출애굽기 3장 6절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언약을 하셨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상징하며, 이삭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야곱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열두 지파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한다. 그리고 성도는 열두 지파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바로 이 언약으로 인함이다.

 

언약은 죽음과 부활생명으로 집약된다. 가나안의 민족들이 죽고, 백성들은 그 땅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심령 속에 옛사람이 죽고 세사람으로 태어난다는 말씀이다. 이게 언약의 완성이며, 천국이라는 것이다. 영적으로 십자가의 죽음은 가나안 민족의 죽음으로, 부활은 새로운 백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으로 비유된다.

 

왜 하나님은 이런 가나안 정복 이야기를 구약에서 신약으로 계속 말씀하시는가? 바로 세상이 여섯민족이 지배하는 가나안이요, 하나님 나라는 백성이 가나안 민족을 물리치고 정복하는 가나안이라는 말씀이다.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지만, 성도의 내면의 영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사탄의 지배를 받으면, 아낙자손의 가나안이 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으면, 열두 지파의 가나안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영적 언약의 가나안이 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자는 온갖 영적 우상과 음행이 난무하는 가나안이 되는 것이다. 세례는 언약의 가나안이 되는 자에게는 성령세례로, 우상과 음행이 난무하는 가나안에게는 성령의 불(불세례)이 그들을 심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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