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판을 내가 만든 궤에 넣었더니 지금까지 있느니라
그 판을 내가 만든 궤에 넣었더니 지금까지 있느니라
신명기 10장 1-5절「그 때에(에트)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처음과 같은 두 돌판(에벤 루아흐)을 다듬어(파살) 가지고 산에 올라 내게로 나아오고 또 나무(에츠)궤(아론) 하나를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쓴 말(다바르)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카타브) 너는 그것을 그 궤에 넣으라 하시기로 내가 조각(쉬타 파살)목(에츠)으로 궤를 만들고 처음 것과 같은 돌판 둘을 다듬어 손(야드)에 들고 산에 오르매 여호와께서 그 총회(카할) 날(욤)에 산 위(타벡) 불(에쉬) 가운데에서 너희에게 이르신 십계명을 처음과 같이 그 판에 쓰시고 그것을 내게 주시기로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서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그 판을 내가 만든 궤(아론)에 넣었더니 지금까지 있느니라」
에트 라는 그 때는 모세가 두 돌판을 깨뜨린 때를 의미한다. 에벤 루아흐는 번쩍거리는 돌이다. 파살은 새기다, 조각하다, 베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나무(에츠)궤(아론) 하나를 만들라” 히브리어 성경에는 하나라는 단어는 없다. 아론은 상자 모양의 궤인데, 나중에 법궤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법궤 속에 두 돌판이 있었다. 히브리서 9장 3-4절「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처음 판에 쓴 말(다바르)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카타브)” 다바르는 말(계명), 명령하다, 정복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조각목으로 번역한 “쉬타 파살”에서 쉬타는 아카시아, 쉬팀(막대기),파살은 조각하다, 베다 라는 의미로서, 쉬타 파살은 조각한 아카시아라는 의미다. 에츠는 나무를 의미한다. 쉬타 파살 에츠는 조각한 아카시아 나무를 의미하는바, 개역개정은 아카시아를 번역하지 않았다.
아카시아는 가시가 있는 나무를 의미하며, 괴롭히는 가시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시딤나무로 번역되는 아카시아 나무와 그 가시는 광야의 척박함 속에서 자라나는 가시 돋친 특징 때문에 영적 상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인간의 죄의 결과로서, 고난과 인간의 연약함을 나타낸다. 아카시아 가시는 저주받은 땅의 가시라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8절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후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낼 것이라는 저주를 상징한다. 찌르는 가시는 인간의 타락, 죄로 인한 고통, 그리고 척박한 인생의 시련을 의미한다.
둘째, 가시 면류관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구속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머리에 쓰신 가시 면류관은 아카시아의 가시와 같은 고난의 상징이다. 이는 인간의 죄 때문에 지신 고난과 대속을 의미한다. 가시가 많은 싯딤나무로 만든 언약궤와 가시 면류관은, 죄 많은 세상(가시) 가운데 오셔서 죄를 속량하신 예수님을 보여준다.
셋째, 언약궤와 떨기나무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거룩한 임재의 도구로서 아카시아는 성막의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와 언약궤 채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이는 가장 낮은 곳(광야, 가시나무)에서 자란 나무가 하나님의 영광(금으로 덮임)을 담는 도구가 된다는 뜻으로, 고난 속에서도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와 보호를 상징한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불타는 떨기나무가 바로 아카시아 나무의 일종으로, 고난과 시련(가시)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소멸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한다.
넷째,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견디는 강인한 믿음을 의미한다. 아카시아는 광야의 메마른 땅에서 자라는 가장 강인한 나무다. 이는 세상의 시련(가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성도의 강인함을 상징한다.
아카시아 가시는 죄와 고난이라는 현실을 보여주지만, 그 나무가 하나님의 성소(언약궤)의 재료로 쓰임으로써 고난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담아내는 구속의 은혜를 동시에 나타낸다.
야드는 손이다. 히브리어 성경은 브야디(기본형이 야드)로 되어 있다. 이 브야디는 “내 손 안에서” 라는 의미다. 모세의 손 안에 있는 두 돌판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돌에 불과한 것이다. 거친 돌을 깍아서 만든 돌이다. 이 거친 돌에 하나님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 거친 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령한 반석으로 되면, 하늘의 생명이 된다. 반석은 곧 그리스도이시다. 성도의 심령 속의 옛사람은 거친돌이다. 성령으로 거친돌을 제거하고 신령한 돌을 세워주시면, 성도가 성전이 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 총회(카할) 날(욤)에 산 위(타벡) 불(에쉬) 가운데에서” 총회는 백성들이 모인 회중을 의미한다. 욤은 덮다, 날, 세대라는의미를 갖는다. 산은 하나님의 성전을 상징하며, 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낸다. 회중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있는 가운데 라는 의미다.
“산에서 내려와서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그 판을 내가 만든 궤(아론)에 넣었더니”
처음 두 돌판은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모세에 의해서 깨어졌다. 모세는 첫사람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첫사람 그리스도는 죽어야 하는 모습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두 돌판이 법궤 속으로 들어간 것은 노아의 홍수 사건에서 방주 속의 역청을 상징한다.
창세기 6장 14절『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방주는 고페르나무(잣나무:백향목)로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다. 고페르는 유숙하다 라는 뜻의 어근에서 유래되었는바, 웨카파르타(וְכָֽפַרְתָּ֥ 기본형 카파르, 칠하다)는 동사이고, 고페르(גֹ֔פֶר방주)는 명사이다. 바코페르(בַּכֹּֽפֶר 기본형은 코페르, 역청)도 명사이다. 카파르, 코페르, 코페르 세 단어가 있다. 고페르(방주)를 규정할 수 있는 단어가 코페르(역청)이다.
역청을 보면, 본래 의미는 덮개, 속전의 의미를 갖는다. 상징적으로 속죄하다, 또는 용서하다, 속죄하다, 정결케 하다, 취소하다, 용서하다, 자비롭다, 진정시키다, 칠하다, 정하게하다, 제거하다, 화목하다등의 의미가 있다.
출애굽기 30장 12절에서『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코페르)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것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
속전은 덮개로 표현된 속죄와 연관된다. 출애굽기 29장 36절에서『매일 수송아지 하나로 속죄하기(카파르)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며 또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깨끗하게 하고 그것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라』
레위기 23장 27절에서『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욤 키푸르)이니 너희는 성회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사람이 죄를 범했을 때, 값을 지불하는데, 하나님과 화목을 위해서 소나 양 등 가축을 제물로 드렸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일년에 한번 들어가서 법궤를 덮고 있는 시은좌(속죄소:코페르트) 위에 피를 뿌렸다. 죄를 속죄할 때는 피를 뿌림으로 속죄했다. 고페르 코페르 카파르에서 파르 라는 단어가 소를 의미한다. 카프는 손바닥이다. 소에다가 손을 덮으면 죄인의 죄가 소에게 전이(안수)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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