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3장 9-21절에서『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은 물질세계로서 반드시 종말이 있다. 즉 영의 세계와는 달리 유한하게 지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 달성할 때 까지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계시는 영의 세계보다는 더 좋다고 할 수 없다.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바 천국은 보석으로 되어있다고 표현한다. 이 세상에 비할 수 없는 곳으로 표현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영이 갇혀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8장에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살려주셨다.누가복음 8장 54-55절에서『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죽은 아이의 영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볼 때, 영은 몸 속에 갇혀있는 것이다. 영이 나가면 육체가 죽고, 영이 들어오므로 육체가 살게됨을 알 수 있다. 영과 육체는 반대적인 입장에 있다.『육체가 살았다』함은 영이 죽은 것이다.『죽었다』라는 표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말한다. 영이 살기 위해서는 육이 죽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는데, 그를 믿는 자는 예수님과 함께 육체적으로 죽는 것이다. 영이 살기 위해서는 육의 몸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와 함께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된다. 육의 몸에 갇힌 영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없다. 다만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이 되는 것이다. 

시편 (14편 2-3절)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을 찾는 자가 하나도 없다 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장 10-12절). 이런 표현이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인간들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악하고 하나님은 선하시다. 악은 선과 함께 할 수 없다. 우리가『예수님이 죄있는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올 수 밖에 없는가』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바로 악한 인간 속의 갇혀 있는 영을 구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왜 갇혀있는 영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스스로 육체로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당하셔야만 하는가? 그 이유는 그 영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돌아온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인간의 악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노아의 홍수였다. 창세기 6장5절에서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그래서 하나님이 노아와 그의 가족 8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멸절시켰으며, 이것이 첫번째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모습이다.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은 상태 즉 하나님없이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모습은 이렇게 멸망당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노아에게 다시는『모든 인간들을 멸하는 방법을 택하시지 않겠다』는 무지개 약속을 하신 것이다. 무지개는 홍수에 의해 심판이 있었음을 기억하라는 표시다. 이 말씀은 부분적으로 인간들에게 개입하셔서 잘못되면 심판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번째 단계로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개입하셔서, 인간들이 모두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선택이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는 율법을 주셨다.
이스라엘은 전 인류의 모델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을 대조시키면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악행을 그대로 답습해 온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멸망시켜 버렸다. 이스라엘 백성인 롯과 그의 가족(처는 소금기둥이 됨)만이 구원을 받았다. 이 구원은 앞으로 있을 종말에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예표로 설명되기도 한다. 이것을 지켜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도 이렇게 될 수 있음을 경고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 부터 율법을 받았지만, 가나안 땅을 앞두고 애굽으로 부터 나온 일 세대 중 여호수아와 갈렙, 19세 이하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말았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하신 열가지 재앙과 홍해를 건넌 기적을 보았으면서도,『가나안에 들어가면 약속된 땅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는 등의 패역의 길로 들어간 것이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물과 제사를 드렸지만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은『예물과 제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에서의 죽음은 부분적인 징계이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율법을 지키지 못하여 범죄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결과로 결국 예수님이 오신 당시 A.D.8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해 나라 전체가 멸망당했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노아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 불 심판 이후, 악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 세번째의 사건이다.

 누가복음 21장 20-22절에서『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라고 표현했다. 기록된 모든 것은 율법으로서, 율법에 따라 살지못한 죄를 처벌한 것을 말한다. 율법으로는 의를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은『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단지 율법만 지키면 의인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네번째 하나님이 모든 인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하나님이 직접 육신의 모습으로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존재임이 증명된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의 모델은 실패했으며, 이제 모든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이 주어진 것이다. 자신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세상이 좋고, 하나님 없이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고 다시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재림하실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예수님의 재림 후에, 메시야가 하실 일이다. 이스라엘 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을 위하여 메시야가 다스리는 왕국이 나타난다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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