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 다섯처녀는 무슨 죄를 지었나?


마태복음 25장 1-13에서『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 쌔 미련한 자들이 슬기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미련한 다섯 처녀는 천국잔치에 들어가지 못했으므로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지 못한 자를 상징한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죄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에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예수님을 알아야 하고, 믿어야』한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도『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라고『저를 믿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 6장 39-40절에도『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하셨고,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는『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했다. 아버지의 뜻은『아들을 보고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 그 사람의 중심은『아들을 보고 믿는 것』이다. 

열처녀는 모두 다 졸았다. 교회의 일을 열심히 하고, 열심히 안하고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졸지말고 깨어 있으라』는 말은 교회의 일에『게으르지 말라』라는 말이 아닌 것이다.『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쫒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큰 권능도 행했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태복음 7장 23절에서『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미련한 다섯처녀는 신랑이 온다는 소식에 잠을 깨니, 기름이 없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에게『기름을 꾸어달라』고 하니『기름이 모자란다』고 주지않고,『파는 사람에게 가서 사라』라고 했다. 그래서 사러 갔다 와보니 문이 닫힌 것이다. 미련한 다섯처녀가 문을 열어달라고 하니, 예수님이『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미련한 다섯처녀가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예수님이 모른다』라는 것이다. 미련한 다섯처녀는 예수님을 알고 있는데, 문제는 예수님이 미련한 다섯처녀를 모르는 것이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내가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께 희생제물과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은『받은 적이 없다』라고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책망하셨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10장 32-33절에서『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그런데, 미련한 다섯처녀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했다. 그런데『예수님은 모른다』고 했다.

 열처녀가 단지 예수님을 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이유는『자기를 기다리는 자들을 데려가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데려갈 사람을 알고 있다. 미련한 다섯처녀는 데려갈 사람이 아닌 것이다. 미련한 다섯처녀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는 초점이 맞지 않다. 
『깨어있으라』라는 말은 율법의 덮개가 벗겨져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라는 말이다. 이 성경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스라엘에게 말씀하고 있다. 여전히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율법 아래에 있어서『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 라는 말이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에『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사도바울이 말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해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은 예수님이 하신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큰 권능을 행하던 자들에게 예수님은『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라고 하신 이유는 율법을 행하면서, 예수 이름으로 권능도 행하는 사람에게『적용하고 있는 법이 맞지 않다』라는 말이다. 율법을 행하는 자는 율법으로 적용해야 하고, 예수 믿는 자는 성령의 법에 적용되어야 하는데, 율법을 행하는 자가 성령의 법에 적용받으려고 하니 불법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불법을 행하는 자』로 말씀하는 것이다. 그리고 율법을 적용받는 자에게도 율법을 지키지 못하므로, 율법에 대한 불법인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서 열심히 율법을 지키려고 한다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며, 하나님이 인정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 

율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한다.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은 율법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육체로 비롯하여 나타나는 모든 것은 다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삼일만에 사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새생명 가운데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율법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법 아래에 있는 것이다. 바로『예수와 연합된 자요, 예수 안에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성령의 법 아래 있는 몸은 영의 몸이다. 그리고 율법 아래 있는 몸은 육의 몸이다. 그래서 육의 몸을 부인하고, 오직 영의 몸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아가야만 한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이 현재적으로 살아있으나, 육을 통제하는 방법은 오직 예수와 함께 죽은 자임을 날마다 고백하며 사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길이요 생명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 외에는 구원이 없다. 

이 세상에서 율법을 적용하려고 하는 자는 성령이 없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율법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한다. 성령이 없는 자는 예수님이 알지못하는 사람이다. 성령의 법을 적용받는 자만이 예수님이 아는 사람이다. 성령의 법을 적용받는 사람은 반드시『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사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런데 죽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예수와 연합된 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율법에 대해서 죽고, 죄에 대해서 죽고, 세상에 대해서 죽는 것을 믿는 것이 예수와 연합하여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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