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언약과 노아의 반응


창세기 9장 11-13절『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성경은 언약이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주신 언약은 크게 두가지로 대별된다. 첫째는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되, 노아와 그 가족은 방주를 통하여 살려주신다는 언약이다. 둘째, 홍수 후에 무지개를 보여주셔서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는 언약이다. 무지개언약은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라는 의미와 동시에 은혜도 베풀어주시겠다는 것을 나타내신다. 8장 21절에서『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인간은 원래부터 타락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그래서 개선이 불가능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구원이 불가능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 노아가 방주로부터 나와 제사를 받으시고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정결한 짐승으로 부터 제사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분노를 푸시겠다는 것, 즉 십자가의 은혜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동물 제사에 정결한 짐승은 희생제물로 죽고, 부정한 동물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다. 두가지의 의미가 있다. 정결한 짐승의 희생으로 부정한 동물이 살게된다는 것과, 정결한 짐승의 죽음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죽어야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방주에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까지 들어가게 하셔서 목숨을 유지시켜주셨다. 

구원은 정결한 짐승이나 부정한 짐승이나 상관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구원을 받게된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노아의 이름의 의미는 안식(안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에 대해서 설명하시는 것이다. 안식은 홍수 후에 온다. 즉 악한 인간을 멸하시고, 살아남은 노아와 가족에게 안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안식은 홍수 후에 주어지듯이, 이 세상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인들을 대속하기 위해 하하나님으로 부터 심판받으시므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안식을 얻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이 없는 것은 안식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질 때 하나님의 안식이 있게된다. 

창세기 6장 17-18절에서『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하나님의 언약은 모든 육체는 다 멸절당하고, 방주에 들어가는 자는 살아남는다는 언약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죽음과 생명의 언약이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언약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언약인 것이다. 방주의 창은 위로부터 나 있으며, 하늘로부터 생명을 얻어야 살 수 있다는 메시지다. 이는 믿음이 하늘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믿음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다.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찟겨졌다. 구원은 인간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시작된 것임을 나타낸다. 그런데 대부분 인간들은 여기에 반응이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 회개하여 부르짖는 자들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다. 

창세기 7장 23절에서『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방주에 들어간 자만 살아남았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만 구원얻는다. 옛사람이 죽은 자만 새생명으로 구원을 얻는다. 그래서 생명은 죽은 자가 얻는 것이다. 옛사람의 죽음은 생명으로 나아가는 축복의 문인 것이다. 하나님이 방주에 들어간 자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묻지 않으신다. 단지 하나님은 그의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시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바라보신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을 언약백성이라 말하며, 인간의 혼인관계로 비유하셨다. 창세기 2장에서의 결혼으로부터, 에베소서 5장에서의 결혼으로 나아가 요한계시록의 어린양의 신부로서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하나님의 백성(신부)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생명을 부어주신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가 되지 않으면(하나님을 닮아가는 것) 가짜 복음이다. 마태복음 19장 5-6절에서 말씀하시기를『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신부가 입는 세마포는 구약의 제사장의 옷과 같은 모습이다. 출애굽기 28장 1-3절에서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 모든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성도가 제사장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처소인 성막이 성도의 마음 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마음의 성소에서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되는 것이다. 제사장의 옷은『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하나님의 신부가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성도를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현재의 추악한 육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으로 재창조(거듭나서) 되는 것이다. 제사장은 다른 이들과 거룩하게 구별된다. 왜냐하면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함이다. 그래서 제사장을 위하여 희생제사를 드린다. 곧 제사장은 하나님께 죽은 자가 되고, 다시 거룩한 자로 재창조되어 지성소로 들어가게 된다. 제사장에게 기름이 부어진다. 기름은 성령을 의미한다. 그래서 성령이 인도함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 죽 율법에서 완전히 벗어난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은 몸이 되는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것은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이다. 노아의 이야기는 세상의 이야기이지만, 이것은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혼인관계로서 신부의 옷을 입는 것을 말한다. 모든 인간은 심판을 받아서 죽을 존재이지만,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 신부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신다. 방주에서 살아남은 자들도 목숨이 다해 육체적으로는 죽음을 맞아하게 된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신부가 입어야 할 옷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방주는 하나님의 신부가 입는 그리스도의 옷을 상징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도 영적으로 부부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영적 신부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범죄한 영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부활한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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