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교인에 대한 바울의 마음



(고린도후서 2장1-9절)『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드러내고 있다. 당시 바울은 3차 전도여행 중이었다. 고린도로 먼저 보낸 디도를 빨리 만나기 위해 마게도냐까지 갔는데 거기서 디도를 만나 고린도 교회의 여러 문제들을 듣고 마음이 아픈 나머지 본 서신을 써서 보냈다. 만약 원래의 전도여행 계획대로 고린도를 방문하여 성도들이 저지른 잘못을 지적하고 엄단했다면 그것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큰 근심의 요소가 될 것이기에 곧바로 고린도로 가지 않고 계획을 변경하였다.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할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함이었다. 바울이 그렇게 하므로 훗날 기쁨으로 만나기를 원했던 바울의 깊은 배려가 담겨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유익하고, 자신에게도 기쁨이 되는 세심한 배려를 보여준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부류의 교인들이 있었다. 복음을 전한 바울의 기쁨이 되는 교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반면 고린도 지역의 험악한 환경의 영향으로 바울에게 근심이 되게 하는 교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직접 고린도 교회를 찾아가서 책망하고 문책하기 전에 눈물로 편지를 써 보내면서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고자 했던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무엇을 돌이키는 것인가? 내가 하나님을 떠난 자였으며, 하나님께 대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옛사람이라는 탐욕을 버리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하나님께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이다. 그래서 세상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그래서 하나님이 의로운 자로 태어나게 해 주신다. 죽었던 영이 살아나 영의 몸을 입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영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육체는 소욕을 원하고, 성령은 못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 나시고 죄인들을 구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셔서 속량하셨으므로, 율법 아래 있던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율법 아래에서 죽고, 율법 위에서 새 생명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즉 율법에서 해방되었다. 그러므로 율법 아래 있지 않으므로 죄 아래에 있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육체가 현존하므로 육체의 소욕과 싸우는 것이다. 이 싸움은 죽을 때까지 싸운다. 

옛사람이 죽지 않은 자들은 영적 싸움의 의미를 알 수 없다.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이다. 영의 몸으로 거듭난 자 만이 영적 싸움에 들어가는 것이다. 싸움에서 이기는 의미는 부모로부터 받은 육이 원하는 것을 통제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로 태워지는 것이다. 태워지는 연기가 바로 하나님께는 향기가 되어 흠향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로마서 6장 6절) 육체로 비롯된 옛사람은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라는 것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다시 사는 것을 믿는 것인데, 대부분 사람들은「죽는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육체로 비롯된 옛사람이 율법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죽는 것이다. 그게『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를 말한다.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서 육체의 일에 대해서 설명한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도『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라고 말했다 이렇게『육신의 소욕대로 사는 자들은 예수와 상관없다』라는 말이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바는 성령의 열매로 알 수 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서 말하는 바『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향기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이 이렇게 인도하시는 것이다.『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로마서 7장 4절) 

죽은 자는 옛사람이다. 죽은 사람이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은『죽지않았다』라는 말이며,『옛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말이다.『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함께 죽어서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죽지 않아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를 말한다. 마태복음 7장에서『주여,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병자도 고치고 큰 권능도 행했다』라고 하는데, 예수님은『도무지 너를 모른다』라고 하였다. 이런 자는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믿지만, 사실 상 옛사람이 죽지 않아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로마서 8장 1절) 옛사람이 죽은 자는 영의 몸이 주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의 몸을  정죄하지 않는 것이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거듭난 자를 죄와 사망의 법(율법)에서 해방하였기 때문이다. 옛사람이 죽으면 성령에 의해 영의 몸이 태어나고, 그 영의 몸은 성령의 법을 적용받는다. 성령의 법을 적용받으므로 율법과는 상관없는 자가 된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옛사람이 죽지않은 것요,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 자』라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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