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한복음 16장 12-16절)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예수님의 공생애와 관련해 요한복음16장은 예수님의 공생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다. 곧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주님은 이런 사실을 알고 계셨기에 자신의 처한 상황과 앞으로 전개될 일들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3년 동안 동고동락한 주님에 대해 여전히 바로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진리의 성령께서 제자들을 십자가로 인도하신다. 십자가 만이 진리가 되는 것이다. 십자가를 말하지 않는 것은 진리의 성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의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인지 아닌지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성령의 일을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어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하지만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나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마치 애매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제자들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 후에 부활하여 만날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그러자 제자들의 말을 들으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지금 내가 한 말을 가지고 논의하고 있느냐?』고 물으신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신다는 것 자체를 받아드릴 수 없었기에,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여 성령께서 오시고 하는 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그냥 종교적인 학습을 통해 주입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만나서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서 십자가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이유를 알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은혜와 비밀을 알고, 죽음에서 다시 사시고 승천하신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 왜 고난 받으셨고, 왜 죽으셨는지를 알고, 어떻게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신 약속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이고, 그리스도께서는 떠난 자들을 구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며,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하나님께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과 연합될 때 하나님은 죄값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자의 죄를 덮어주시는 것이다. 

특히 『조금 있으면』, 곧 『잠시 후면』이 여러 번 반복되고 있는데, 예수님 말씀하신 대로 잠시 후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일이 일어났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모르던 그때로부터 잠시 후에 우리가 죽음과 부활의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알았고, 잠시 후에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알고 있듯이, 인생의 시간이 길어도 긴 것이 아니요, 기다림의 순간이 긴 것 같아도 긴 것이 아님을 알고, 끝까지 살아계신 예수님과 연합하여 말씀과 함께 인생길을 가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기쁨과 응답에 대한 말씀이다. 마침내는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고통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너희가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상실과 절망이었다. 그것은 슬픔을 넘어 고통이었을 것이고 근심과 두려움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에수님은 제자들의 큰 의지였고 기대였고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에수님은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계셨다. 그러기에 제자들에게 말씀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용기와 약속을 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영의 몸으로 거듭난 자들은 육의 몸(옛사람)이 죽었지만, 현실적으로 육체가 살아있어서, 사탄이 공격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라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다 제곳으로 흩어지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특히 교회 사람들은 대부분 거듭남에 대해서 마음의 변화로 생각한다. 율법의 규정들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살펴보고, 늘 자신이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부지중에 죄를 지으면 곡 회개하여 예수의 보혈로 용서를 받으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 속에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으며, 그러나 살면서 세상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으므로, 온몸은 씻었지만, 더러워진 발을 매일 씻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럴듯한 생각이다. 그러나 거듭남은 마음의 변화가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뱀의 DNA를 가지고 있는 육의 몸(옛사람)은 죽고, 하나님의 DNA를 가지는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뱀의 DNA는 결코 변화되어 하나님의 DNA로 갈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결코 회개한다고 스스로 거룩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죽고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6-7절의 말씀이 다가오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옛사람이 죽지 않은 자요,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는 옛사람이 죽은 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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