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사도행전 3장 22-26절)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베드로가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면서 새로운 희망을 전한다.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그리고 베드로는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며 은혜를 베푸는 날에 마음 문을 열고 구원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4장 2-3절『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의롭다하심을 얻는 믿음은 무엇인가?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흔들릴 수 없으며, 우리의 거듭난 내면의 세계도 바뀌지 않는다. 어제는 잘 믿었는데, 오늘은 믿음이 흔들렸다면 그것은 여전히 옛사람이다. 아브라함도 25년간 그러했다.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다. 떠난다는 것은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오직 하나님의 도움 만이 있는 것이다.
아브람이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가게된다. 그런데 친척 롯을 데리고 나온다. 회개하지 않으면 순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순종하는 만큼 분별하게 된다. 아브람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다투는 것이다. 양은 늘어가고 있는데, 물이 부족하므로 다투었다.『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하나님은 롯을 통하여 자기의 소유를 잃게 만드셨다. 그때 하나님이 아브람과 함께 하시고 아브람은 롯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 전쟁 중에 롯을 구하는 기회도 주시고, 멜기세덱을 만나는 영적 체험도 했다. 이것은 베드로가 예수와 함께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는 그런 체험과도 같은 것이다. 그 다음에는 아브람이 이스마엘을 낳는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사래의 말을 들었다. 하나님은 자녀를 주신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그런데 기다려도 자녀가 나오지 않으므로 사래의 말을 들은 것이다.
아브람은 자기가 주인인 것이다. 우리도 내가 주인일 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도 소용이 없게 된다. 아브람과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는 자였다.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주님을 기다리지 못할 때 인간적인 방법을 쓰게된다. 이게 이스마엘이다. 아브람이 86세에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때부터 13년간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지 않으셨다.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 놓여있을지도 모른다. 예배를 드리고, 집회에 나가기도 하지만 남들은 은혜를 받는데, 자기는 은혜받은 것 같지 않는 것이다. 아브람에게서 13년은 출애굽한 히브리 백성에게는 광야에 해당하고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는 기간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 자신을 신뢰하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신다. 이것이 회개다. 회개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내 판단, 내 계획을 믿지 않는 것이다. 로마서 4장 19절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을 이렇게 말한다.『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아브람이 백세가 되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25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는『누구든지 나를 따르고자 하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라고 했는데,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겠는가? 회개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세상을 사랑하는 자다. 그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회개하지 않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 요한1서 2장 15절에서『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회개하는 자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를 미워하게 된다. 이게 자기 부인이다. 회개하는 자와 회개하지 않는 자는 빛과 어두움처럼 분명하게 구별된다. 고린도후서 2장 10절에서회개는 단 한번으로 끝나는 절차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 상태의 연속성 상태를 보여준다. 회개의 영적 상태는 내가 판단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만이 판단하실 것이다. 십자가의 우편 강도처럼 단 한번으로 영적 상태가 이루어 질 수 도 있겠지만, 수 없는 회개 속에서도 어느 날 거듭난 것을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회개는 자기 부인이고 자아가 죽는 것이지만 이 말씀은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세상 죄인 허물에 대해서 반성하는 차원에서『회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근본적인 의미는『그 때 그 때의 반성』이라는 절차적인 말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자아가 죽어있는『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한 사도바울의 말씀을 상기해야만 한다.『회개한 자』는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회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영적으로 깨어있어만 한다. 그것을 위하여『날마다 회개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다. 날마다 반복되는 죄를 회개할 것이 아니라 날마다『자아의 죽음』의 상태를 지켜 나가야만 한다. 잠언 4장 23절에서『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날마다 회개가 생각나는 사람은 정말 자신이 하나님께 회개한 자인가를 생각해야만 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확실히 받아드려야만 한다. 그리고 받아드린 자는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나가야만 한다. 날마다 죽은 자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게 영의 마음이다. 살다가 보면 육체의 연약함으로 인해서 가끔 허물(세상죄)에 빠지는 경우가 있으나, 그 때는 죽은 자임을 다시 한번 기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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