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사도행전 27장 23-26절)『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
바울이 유라굴라라고 하는 광풍이 부는 배에서 한 말이다. 바울은 여러 날 동안 풍랑이 계속치고, 먹지도 못하고, 구원의 여망이 없어진 사람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면서,『배의 손상 외에는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울은 쇠사슬에 묶여, 로마로 호송되고 있었다. 바울이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빛 가운데 나타나신 주님을 만났다. 주님을 안다는 것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남에 있다. 그래서 주님을 신뢰하는 자가 주님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19장 18-19절에서『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하나님이 모세에게 백성들이 산으로 올라오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백성들이 올라오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다. 이런 와중에 백성들은 시내산 아래에서 황금송아지를 만들었다. 백성들은 애굽에서 열가지 재앙과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백성들의 눈에 하나님은 맹렬한 불같이 느껴졌으며,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을 위한 신을 만들려고 했다.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하나님이 그들의 주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적을 경험하고, 성령의 능력을 체험해도 누가 주인인가의 문제다.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를 위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가 될 때,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된다.
하나님이 주가 되시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이 세상 어떤 방법으로도 될 수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십자가에서 그 분과 연합되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만 하나님이 주가 되신다. 자신의 육으로 비롯된 기억이 되살아나는 그 때,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이다. 주인이 누구인가는 어떤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가가 중요하다. 영적 기억은 십자가에서 죽는 순간부터 자리잡게 된다. 매 순간 육의 기억을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투영시켜야만, 영이 살아날 수 있다. 새로운 피조물로서, 영적 기억은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생명으로 태어난 자라는 것이다. 지우고 싶은 수많은 기억들을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소중한 영적 몸을 지닌 자라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다.
영적 전쟁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상황때문이 아니라, 내적인 생각으로 발생한다. 문득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사탄은 육의 기억으로 회귀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갑자기 되살아나는 생각이 사람을 더럽히게 만드는 것이다. 갑자기 육의 기억을 되살아나게 만드는 것이 눈과 귀와 입이 역할을 하게 된다. 어떤 기적과 경험을 해도 이런 일들은 계속 발생하게 된다. 구약시대 솔로몬과 같이 하나님이 수 많은 축복을 했어도, 죄악에 넘어졌으며,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버렸다.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가 자기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 이 문제는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매일 매일이 영적 전쟁이다. 그래서『날마다 죽노라』가 반복된다. 이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여전히 어둠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는 음부로, 나사로는 낙원으로 갔다.부자가 형제가 여러명 있었는데, 그는 이브라함에게『나사로가 다시 살아나서, 음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 회개하고 돌아설 것이라』고 부탁했지만, 아브라함은『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서 음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어도,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해주어도 다시 과거의 생활 방식대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회개는 삶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전의 것이 죽지 않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이『어떤 체험을 하거나 성령을 경험을 하면, 믿음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더 좋아지지 않는다.
자신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깨닫지 못한다면, 에덴동산과 같은 곳에서 살던지, 솔로몬과 같은 축복을 받은 삶을 살지라도 사탄이 주는 생각에 함몰될 것이다. 돌이키지 않으면, 세상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세상의 늪은 움직일수록 더 빠져들게 한다. 돈과 권력과 명예에 빠져들면, 헤어나기 힘들다. 영적 눈이 감겨지고, 사탄이 속이는 말이 들어오게 된다. 사람은 항상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매일 성경 공부를 하고, 기적을 체험해도, 매 순간 십자가로 돌이키지 않으면, 육적 생명의 기억이 되살아 나는 것이다. 그래서 철저히 자기가 주인인 사람이 된다. 자기가 주인인 사람들은 출애굽한 히브리 백성들이 모세가 십계명을 받고 있을 때, 황금 송아지를 만들고 있던 자라는 것이다.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시내산으로 올라가면 다 죽는다.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자기 외에는 믿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는 자에게 환란을 주셔서 연단을 받게 한다. 환란받는 사람들은 욥처럼 회개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이다. 환란이 구원으로 인도하는 십자가인 셈이다. 환란을 통과하면서『내가 얼마나 나밖에 모르는 존재인가』를 깨닫게 된다. 아무리 성경을 일고, 체험을 해도 이런 것을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회개는『우리가 죽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데서 시작된다.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우리도 십자가의 예수를 버리게 되는 것이다. 회개하는 자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자신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죄명이 바로 자신의 죄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아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아들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피흘려 죽기까지 하신 그 놀라운 모습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마음으로 받아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수와 함께 죽으려고 하지 않는다.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 회개는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이며,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게 자기가 주인인 삶을 내려놓는 것이다. 예수가 주인인 삶을 사는 자는 세상 일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풍랑이 몰려오건, 어려움에 처하는 상황이 되던 회개하는 자는 주인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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