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가데스에 여러 날 동안 머물렀나니 (신명기 1장 41-46절)

 

너희가 가데스에 여러  동안 머물렀나니

 

신명기 141-46절「너희가 대답하여 내게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사오니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올라가서 싸우리이다 하고 너희가 각각 무기를 가지고 경솔히 산지로 올라가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 하시기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거리낌 없이 산지로 올라가매 그 산지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이 너희에게 마주 나와 벌 떼 같이 너희를 쫓아 세일 산에서 쳐서 호르마까지 이른지라 너희가 돌아와 여호와 앞에서 통곡하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며 너희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셨으므로 너희가 가데스에 여러  동안 머물렀나니 곧 너희가 그 곳에 머물던  수대로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아모리 족속과 싸우지 말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싸우겠다고 자만하여 경솔히 산지로 올라갔다. 하나님의 임재가 그들 가운데 없었기에, 그들은 아모리 족속에게 대패하고 도망쳤다. 백성들은 크게 통곡하며 하나님께 범죄했음을 인정하고 다시 올라가 싸우겠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소리를 듣지 않으셨고,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40일간 정탐꾼이 정탐하고 돌아온 날을 기점으로, 즉 백성들이 가데스베네아에 머문 40일에 대해서,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해서 40(출애굽해서 시내산까지 1, 시내산에서 가데스바네아까지 1년을 합한 2년을 제하면, 38) 동안 광야에서 떠돌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은 다 죽고,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과 출애굽 당시 선악을 분별하지 못한 아이들만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오늘날 예수믿고 천국백성이 되었다고 하는 신도들이 수십년간 이와 같이 인간이 만든 교리와 자기들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믿어왔지만, 하나님이 아모리 족속들과 싸우지 말라고 경고하심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우다가 패배한 것처럼, 율법주의를 바탕으로 자기와의 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율법주의에 매몰되어 버리는 신도와 같은 것이다.

오늘날 신도들은 여전히 율법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복음을 받아드린다고 말을 하면서도 율법주의에 빠져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신앙을 자기 중심에서 찾기 때문이다. 현재적으로 부활생명보다 죽어야 할 육체가 중요하며, 육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 하나님 나라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가 눈에 들어오고 죄로부터 벗어나려고, 예수의 피를 이용하는 것이다.

죄는 원죄와 세상죄가 있는데, 원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이고, 세상죄는 세상에 살면서 탐욕의 결과로 짓는 죄를 의미한다. 그런데, 세례를 받으므로, 죄에 대해서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한 자는 하나님이 예수님의 대속의 피로 모든 죄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것이다. 더 이상 율법으로 죄를 묻지 않겠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로마서 81-2절에서「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세상에서도 처벌할 조문이 없으면, 죄를 묻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이 성도에게는 율법 613가지의 조문을 따져 죄를 묻지 않겠다는 말씀이다.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는 로마서 67절의 말씀에 따른다. 성도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완전히 벗어났으므로, 예수의 피를 동원한 그런 일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성도가 되었다고 믿으면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인식한다면 여전히 죄 가운데서 사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죄를 지을지도 모르는 걱정 속에서 산다면 그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죄로부터 자유함을 주셨는데, 여전히 죄를 걱정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는 가나안에 정탐꾼으로 들어가서 아낙자손을 본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고 말하는 자와 같은 것이다.

성도는 오직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야 할 것이다. 영적으로 성장하여 육체 속의 육적 사륵스를 통제할 능력이 부족할지라도, 계속 영적 성장을 이루어야 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싸움을 벌여야만 하는 것이다. 성도의 이 세상에서의 삶과 목적은 바로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천국)를 세우는 일이다. 이러한 목적 의식이 없다면, 그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자가 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모리 족속과 싸우지 말라고 하시는데도, 그들은 싸우다가 패배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신도들에게 악과 직접 싸우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앞에 나서서 싸우시겠다는 말씀이다. 율법주의를 바탕으로 한 무기가 아니라, 성령이 하시는 말씀의 칼로 싸우시겠다는 것이다.

신도의 마음 속에는 십계명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이 자리잡고 있다. 이 십계명을 율법주의로 바라보는가, 아니면 마음에 새겨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언약으로 바라보는가는 차이가 엄청난 것이다. 율법주의로 바라보면, 선악과를 먹는 자이고, 언약으로 바라보는 자는 부활생명의 과실을 먹는 자가 되는 것이다. 나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율법주의가 되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생명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글자의 조문에 얽매여 그것을 잘 지켜 행한다든지 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순종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바라보면서 뜻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땅을 얻는 것이다. 약속의 성취이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않고 들어가지 않다가 하나님이 진노하신 후에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이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에도 뒤늦게 들어가는 것은 오히려 화를 초래한 결과가 된 것이다.

성도에게 하나님의 언약은 바로 심령 속의 천국을 이루는 것이며, 그 말씀에 순종하면 천국을 얻게 되는 것이다. 순종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신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 요구하고 예수와 함께 죽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기 생각대로 믿는 자가 된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죽으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들은 계속 예수의 피만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이런 신도들에게 진노하시는 것이다. 나는 너를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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