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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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디모데전서 5장 9-10절『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가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당시에 일반 사람들의 수명이 육십을 넘지 못했다. 육십을 넘는다는 의미는 다시 태어남(거듭남)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늙은 과부(육십세 이상)와 젊은 과부를 나누어서 말한다. 늙은 과부는 택하심을 받은 거듭난 자로서 교회 안에서 참 과부를 의미하며, 젊은 과부는 부르심을 얻어 교회에 왔지만 거듭나지 못한 신자를 의미한다.
한 남편의 아내된 자에서 남편은 그리스도가 되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서, 선한 사역이 있는 자라는 것이다. 그것의 증거를 말한다.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적 생명을 얻게하는 것이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세상에 들어온 모든 자들은 나그네라고 할 수 있다. 전도를 통해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이고, 성도들의 발을 씻겨주는 것은 하나님이 성도를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고 성도간의 미워함(죄)으로부터 벗어나라는 것이다.
어려움을 당한 자를 구제한다는 것은 물질적인 구제도 의미가 있지만, 영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새기며, 서로 위로의 말을 나누라는 것이다. 모든 선한 일은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영을 살리는 일인 것이다.
예수님은 성경 말씀 속에서 대부분 비유의 말씀으로 깨닫게 해 주셨다. 그 이유는 씨뿌리는 비유에서도 볼 수 있듯이 땅의 일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의 일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사도바울도 이와 같이 많은 비유를 통해서 말하고 있다.
디모데전서 5장 11-12절 『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 가고자 함이니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젊은 과부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감동이 되어 교회로 들어온 자들이다. 이들을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한다. 그러나 택하심을 입지 못한 자들이다. 왜냐하면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육의 눈으로 성경을 바라본다. 육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정욕이라는 단어로 표현되었다. 육의 눈으로 바라보므로, 율법주의, 인본주의, 영지주의 등 이단교리에 물들고, 이들 이단교리에 의해서 교회를 떠나거나,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분란을 일으킨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말을 했지만, 결국 사탄에게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이를 시집간다고 표현했다.
디모데전서 5장 13-15절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이단사상에 물든 자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멀리하고 주변에 있는 성도들에게 다가가 이단사상을 전파하려고 시도한다. 게으름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상고하지 않는 것이다. 이단사상을 전하는 것은 교회에서 볼 때는 쓸데없고, 분란을 일으키는 일들이며,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회개하여 남편이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 거듭나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태어남을 의미한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집을 다스리는 것에서 집은 성전(교회)를 의미한다. 즉 자신의 마음의 성전인 것이다. 그리스도가 거듭난 자에게 성육신 하는 성도의 마음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이단사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음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 당시의 이단사상은 복음 전파에 가장 걸림돌이었다. 이단사상은 율법주의 영지주의 인본주의 사상이다. 교회 안에는 이미 이런 이단사상에 물들어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다고 말한다.
율법주의는 율법과 다르게 문자적인 규정에만 관심을 갖는다.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해야만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문자적으로 규정을 지키면 의로워진다는 그러나 자들이다. 대부분 유대인들이 그러했다. 영지주의는 신비를 체험하려고 하는 자들이다. 인간 속에는 신성이 있는데, 예수를 믿지만, 신성을 발견하는 노력도 필요하며,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노력도 해 나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오늘날도 이와 같이 가르치는 교회들이 많다. 인본주의는 기복주의 신앙을 의미한다.
디모데전서 5장 16-17절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게 하려 함이라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믿는 여자는 하나님을 떠났지만, 교회에 들어온 자,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다. 마찬가지로 그 여자의 친척도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다. 교회가 짐을 지지 않는다는 것은 참과부가 아닌 자들, 즉 이단사상에 빠진 자들에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교회의 신부가 되지 않는 것이다. 교회는 거듭난 자, 참과부에게 머리가 되는 것이다.
악시우스도산(ἀξιούσθωσαν)은 가치있게 생각하다 존경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거듭난 자들 중에 장로가 된 자들은 그리스도의 계시에 대해서 명확한 지식과 경륜을 가진 자가 된다. 그래서 성도들은 존경하게 되고, 또 그들이 가르치는 사역을 할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실정은 그러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 교리에 대한 지식만 있을 뿐 무엇이 거듭나는 것인지도 모르고, 믿음에 대해서도 정확히 모르는데, 교회의 중심에 서 있는 장로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디모데전서 5장 18절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교회에서도 일을 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다. 물론 교회를 이끌어가는 자들도 수입원이 있어야 살 수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교회의 재정도 필요할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수입원 중에서 십일조는 중심에 있다. 십일조는 수입의 십분의 일을 의미하며, 율법에서는 당연히 바치도록 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도『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성경에 십일조를 해야한다고 말하므로, 십일조를 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율법주의다. 율법인 십일조 속에서 정의(심판)와 긍휼(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믿음(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발견하라는 의미가 되는데, 그런 것은 관심없고, 돈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십일조라는 말 속에는 간접적으로 강요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도들의 마음 속에 율법을 생각하게 하고 자칫 율법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십일조라는 말 대신에 헌금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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