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참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디모데전서 5장 1-2절『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나이가 많은 분들을 대할 때는, 자신의 아버지를 대하듯, 어머니를 대하듯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젊은 사람을 대할 때도 형제와 자매를 대하듯 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모세의 두 번째 돌판에 기록된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인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씀과 연결된다. 육신적 어른을 통해서 영적인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공경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형제자매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형제를 사랑하라는 말과 연결된다. 형제를 사랑하는 일은 바로 영을 살리는 일이다. 이 세상에 온 모든 사람들이 원래는 형제자매인 것이다. 그래서 영을 살려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만 한다. 



디모데전서 5장 3절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바울은 과부에 대해 디모데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런데 그 시작을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여기에서 『참』으로 번역된 『온토스 ὄντως 』는 본래 『참으로, 실제로』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로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과부를 의미한다. 



구약 시대에 과부는 재앙을 받은 존재였다. 그리고 고아나 나그네와 더불어 사회의 소외 계층에 속한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10장 18절의 말씀을 통해, 이들을 깊이 사랑하시며 돌보신다고 하셨고, 신약시대 예수님께서도 과부들을 불쌍히 여기시사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셨으며, 그들을 학대하는 사람들을 책망하시곤 했다. 



이러한 과부들에 대해 바울은 16절을 통해 교회가 참 과부를 존대하며 돌보야 함을 권면하고 있다. 말하자면 영적으로 소외된 자를 찾아가라는 것이다. 과부와 고아는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말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도움을 청하는 자들(케라스 χήρας)이다. 그들에게 참 진리를 선포하며,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부는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로 들어온 자들을 의미하며, 참 과부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가 되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5장 4절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효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다 라고 말한다. 유세베인(εὐσεβεῖν)은『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씀과 연결된다. 육신적 부모를 통해서 영적인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공경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리는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을 떠나 죽어야 할 자라는 것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돌아가기를 부르짖는 것이다. 아포덱톤(ἀπόδεκτον)은 받아드릴만한, 만족스러운 이라는 의미다. 



디모데전서 5장 5-6절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메모노메네(μεμονωμένη)는 머물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께 머무는 자와 향락을 즐기는 자로 구분하고 있다.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세상에 들어온 자들 중, 하나님께 부르짖은 자(과부된 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교회로 들어왔지만, 참 과부는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한다. 간구와 기도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다. 이 세상에 대한 간구와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인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아니라, 대부분 세상에 대한 소망을 기도한다. 



누가복음 2장 36-40절에서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안나는 과부가 되어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하는 중에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그래서 안나는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참 과부와 일반 과부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일반 과부는 향락을 좋아한다. 즉 교회 안에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관심없고, 세상에서 복을 얻기 위해 종교생활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하늘의 생명을 얻었다고 말을 하나, 실제적으로는 생명이 없는 죽은 자라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5장 7-8절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과부된 자의 친족이나 가족을 돌보지 않음을 지적한다. 믿음은『텐 피스틴(τὴν πίστιν)』으로서 그 믿음이다. 우리 말 성경에는 그 라는 지시 대명사가 빠져 있는데, 그 믿음에서 그는 로고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십자가의 속량을 통해서 죽었던 영을 살리는 일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육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지, 영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영에 관심없는 교회 사람들은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들인 것이다. 에르네타이(ἤρνηται)는 믿음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이웃의 죽었던 영을 살리는 것에 관심이 없다면 이와 같이 믿음이 없는 자요,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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