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에 대해서

 십계명에 대해서

 

신명기 5장 1-5절「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그 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언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으로서, 땅과 자손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언약은 조상들과 세운 언약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 이유는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는데, 열 정탐꾼의 말이 들어가면 다 죽는다 라고 말을 하므로,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하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광야 사십년 동안 다 죽게 하고, 이제 새로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과 출애굽 당시 19세 이하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모세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모세가 시내산으로 올라가서 상당한 기간 내려오지 않자, 아론을 중심으로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섬기게 된다. 

 

출애굽기 32장 1-4절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그래서 모세가 산으로부터 내려와서 우상을 섬기는 백성을 보고, 하나님이 주신 두 돌판을 깨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34장 1절에서 말씀하셨다.『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첫째 두 돌판은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율법의 대표격인 십계명으로 출애굽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 돌판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한 백성에게 주신 말씀인 것이다. 그러나 이 돌판은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깨어지게 된다. 이는 백성들이 육의 마음으로는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두번째 돌판은 가나안 입구 모압 땅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들에게 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명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는 율법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는 성령의 법인 것이다. 

 

첫째 두 돌판은 마치 어린아이에게 명령하듯이 반드시 글에 쓰인대로 행하도록 했지만, 두번째 두 돌판은 성인에게 말씀하듯이 마음에 새겨,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영의 마음으로 행동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성령의 능력으로 율법을 완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명기에서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과 출애굽기에서 주신 십계명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신명기 5장 6-7절「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종되었던 이스라엘을 분리하여 이끌어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먼저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 소개하는 것이다.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는 것은 처음과 나중의 두번이 된다. 애굽에서 종되었던 그들을 이끌어낸 여호와가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다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가나안에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한다는 말은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나 외(알 עַל)에는』 라고 번역했는데, 『~ 나의 면전 위에』 라는 의미다. 나의 면전(알페니)은 나의 얼굴 위에 라는 의미다. 너희는 나의 얼굴 위에 다른 신들(엘로힘)로 되지 말라는 것이다. 얼굴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다른 신들은 다름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신들이다. 자기가 신이 되는 것이다. 자기 심령 속에서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다른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님은 사탄의 지배를 받는 자기라는 존재인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다른 영을 전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열심히 하나님을 섬긴다지만, 마귀를 섬긴다고 예수님이 지적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을 하지만 다른 복음을 전하면 마귀를 섬기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장 9절에서『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다른 하나님은 다른 말씀(복음)이다. 

 

처음 두 돌판과 두번째의 두 돌판은 제2계명의 내용에 있어서 약간 차이가 있다. 

신명기 5장 8-10절『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애굽기 20장 4-6절『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처음 돌판은 땅이나 물 안이나 위에 있는 것과 같이 하늘 안에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 있는데, 두번째는 하늘 안에 뿐만 아니라 땅이나 땅 아래 물 안이나 물 안에 있는 것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처음 것은 마음 속에 어떤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고, 두번째는 눈에 보이는 것들과 같이 어떤 형상이나, 마음 속에서도 형상을 만들지 말하는 것이다. 형상이 마음 안이나 마음 밖의 눈에 보이는 것까지 확대된 것이다. 그만큼 우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마음 속의 형상은 보이지 않는 이미지를 의미한다. 인간들 각자가 하나님을 자기 생각에 맞게 이미지화 하는 것이다. 농경사회나 가축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풍요를 주는 분으로 생각한다. 나아가 상징적으로 소를 하나님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발전해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다. 두번째 돌판은 실제 보이는 동식물을 대상으로 인간들이 이미지를 확대한 것을 우려한 것이다. 

 

우상은 자기를 위한 신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말씀 속에서 임재하신다. 다른 말씀을 전하면 우상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곧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런데, 자기를 위한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가 만들어내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곧 말씀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하나님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심령 속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마치 하나님이 오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하나님을 섬기며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신명기 5장 9-10절「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질투하고 방문하는(포케드) 하나님이라고 되어있다. 질투하고 방문하는 하나님은 첫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아담은 죄를 가지고 들어오는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이 죄있는 모양의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하나님이 스스로 이 세상에서 육체를 입고 죽으시는 것이다. 질투하는 하나님은 탕자를 생각하는 사랑을 바탕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죄를 갚되』라는 말은 죄를 넘겨준다는 의미다. 즉 죄는 후대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삼사대까지 죄가 이어진다는 뜻으로 번역되었다. 삼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아들과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자를 의미한다. 이루지 못하고 하나되지 못한 자들을 미워한다는 말이다. 미워한다는 말은 샤네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안에서 물고기들이 이루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루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다. 그의 죽음과 연합되는 자는 하나님이 그의 죄를 미워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미 미워함을 받은 자가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은 세상에 범죄함으로 들어왔으며 다시 그리스도를 통하여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자가 천의 은혜를 받는 것이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과 아들과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율법주의와 같이 문자의 규정에 얽매여 지키느니 마느니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는 것이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가슴 속에 지킨다(보전한다)는 것이다. 

 

신명기 5장 11절「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샤브) 일컫지(잇사)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나카)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

 

이름을 망령되이 라는 말은 헛되이(샤브) 들어올리지(잇사) 말라는 것이다. 한글 번역 망령되이는 불손한 공손하지 못하다는 의미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샤브는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공허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거짓을 위해 여호와의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죄가 없다하지 않다 라는 말은 깨끗하다(나카)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헛되다 라는 말은 황폐하다, 무익하다 라는 의미다. 

 

신명기 5장 12-15절「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안식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히브리서 4장 10절에서 "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하나님을 찾는 일을 그만 두라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을 만난 자는 더 이상 하나님을 찾는 일이 필요없는 것이다. 안식은 쉬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만난 자는 자기 일을 그만 두라는 것이다. 

 

네 일을 한다는 것(메라카)은 하나님으로 부터 계명을 받고 경작(아바드)하며 자기 일을 하는 것이다. 육일 동안 그렇게 하는 것이다. 육일 동안은 육신으로 있는 동안이다. 열심히 경작하여 안식을 얻으라는 것이다. 율법을 열심히 지켜 행하여 보다가 안식의 말씀을 깨닫고 복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말씀을 깨달은 후에는 자기의 일을 그만 두라는 것이다. 

 

안식은 쉬는 개념이 아니라, 육일 동안 창조하신 것이 그 목적에 따라 잘 되게 하는 표징이다. 열 말씀의 표징이 안식이다. 예를 들어 육일 동안 집을 지어놓고, 칠일부터 집에 들어가 쉬는 것이 아니라, 집의 목적대로 생활하는 것이다. 집을 짓는 것을 육일째 다 끝낸다는 말이다. 그래서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안식이며 복된 생활이 되는 것이다. 육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세상이 하나님의 목적대로 잘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안식인 것이다. 

 

창세기 2장 1절에서 하나님의 군대와 땅의 군대가 재편성이 완료되는 것이 안식인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이 바로 안식인 것이다.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없다면 안식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가 없는 세상은 거룩한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세상 일만 하고 하나님이 없는 세상은 안식이 깨어진 것이다. 따라서 안식일을 복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것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자가 바로 안식이 되며,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는 것이다. 안식은 출애굽과도 연결된다. 출애굽은 사탄에 억압되어 있는 영적 상태가 자유함을 입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탄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신명기 5장 16절「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이 땅에 살면서 사람들은 부모의 보호와 사랑을 받고 자라며, 또한 성장하여, 부모를 소중한 존재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이같이 살아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는 그 어떤 혈연적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 부모와 자식간에도 이러한데, 하물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인간도 영이 존재한다. 인간은 육과 영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영이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 살아나기를 원하시고,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이 말을 통해서 영이 죽어있음을 알게 해 준다. 사람들은 영과 혼과 육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한다. 전도서 12장 7절에서『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흙은 사람의 육체가 흙으로 지어졌으므로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8장 에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는데, 예수님이 죽은 소녀를 살리는 내용이 나온다. 8장 55절에서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는 것과 그 영이 돌아오는 것은 같은 것이다. 헬라어로 푸뉴마(영)가 돌아왔다. 영이 돌아와서 살아있는 생명체(히브리어 네페쉬 하이, 헬라어 프쉬케)가 되었다. 영이 흙에 들어가면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다. 

 

우리말 성경에서 마음, 목숨, 생명, 영혼, 혼이라고 혼란스럽게 번역되어 있다. 우리말 번역이 한자를 주로 사용하다 보니 이렇게 번역이 된 것같이 보인다. 그래서 정확하게 헬라어로 정의하자면 영과 흙이 만나면『살아있는 생명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과 혼과 육을 이분법, 삼분법으로 이야기 할 의미도 없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죽으면 영과 육이 분리되어 각자의 길로 가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영과 흙의 결합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영은 육으로부터 빠져 나가고, 생명의 현상은 사라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자들이 나그네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레위기 25장 23절에서『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히브리서 11장 14-16절에서도 나그네임을 설명하고 있다.『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본향, 즉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주체는 영이다. 흙으로 된 인간이 아니라 생명체인 인간 속에 있는 영이 영의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흙으로 된 육체를 벗고, 영의 몸을 입어야만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피조물인 천사들은 모두 영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탕자의 비유처럼, 하나님을 떠나온 자들이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신명기 5장 17절「살인하지 말지니라」

피흘림에 대한 말씀이다. 피는 하나님에게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이다. 피는 아무 곳에서나 흘려져서는 안된다. 레위기에서도 피흘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인간의 최초의 살인 범죄는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이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으로 부터 왔으며, 아무도 생명을 함부러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생명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다. 모든 생명은 한정된 생명이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 피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생명을 찾아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씨의 약속이다. 씨는 생명의 근원이다. 약속의 씨가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 된다. 약속의 씨는 그리스도(메시야)이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것이다.

 

살인에는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는 탐욕이 숨어있다. 하나님께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두고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지 않고 아벨의 제사는 열납했다. 가인이 가지고 온 것은 땅의 소산이었다. 땅은 토지이다. 아담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아다마(토지)에서 유래되었다고 본다. 땅의 소산은 아다마의 소산이다. 즉 사람의 근본된 토지를 갈아서 생산해 낸 열매를 말한다. 하나님 없이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의도를 가지고 열심히 행해서 나타난 열매를 말한다. 

 

율법에 의하면 땅의 소산인 곡물도 제물로 열납하셨다. 땅의 소산이기 때문에 열납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여기서 말하는 땅의 소산은 하나님없이 스스로 만든 것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받지 않으신 것이다. 아벨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첫 새끼를 드렸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이 여인의 후손을 약속했는데, 여인의 후손은 약속의 씨인 그리스도이시다. 가인이나 아벨은 둘 다 약속의 씨에 대한 말을 듣고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인은 그 약속을 믿지 않았다. 약속의 씨에 대한 제사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생산한 것을 하나님께 드렸고, 아벨은 약속의 씨에 대한 믿음의 제사를 드렸다.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았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의 하나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 때에도 세상이 멸망을 당했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을 떠난 자에 대한 심판의 모형을 보여주신 것이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심판을 하시는지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하나님 없이도 하나님처럼 의로워질 수 있다는 그런 마음으로 생산한 것들에 대한 것은『하나님이 열납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심판의 예표를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이 시대에도 가인과 같은 의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안되는 것이다. 가인과 같은 의도와 생각과 노력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가인은 아벨과 같이 약속의 씨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안에 거하기를 싫어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분노와 화였으며 아벨을 쳐죽이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살인이라는 그 내면에는 자기의 의를 나타내는데 방해가 되면,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숨어있다.  창세기 4장 7절에서『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다. 즉 하나님을 떠난 자가 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육신의 소욕인 것이다. 육체가 원하는 마음의 모든 것이 바로 육신의 소욕이며, 이것들이 바로 죄라고 한다. 하나님없이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이다. 

 

신명기 5장 18절「간음하지 말지니라」

간음은 실제 일어난 현장에서 일어난 것 외에도 예수님은 음욕을 품은 자마다 간음한 자로 여기신다. 간음하지 말라고 했으니 간음하지 말아야지 결심을 해도 마음에서 일어난 간음에 대해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 속의 간음의 원인은 탐욕이라는 옛사람이 죽지 않기 때문이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 속에는 간음하고자 하는 마음의 탐욕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육적인 간음을 통해서 영적인 간음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간음은 육적 간음과 영적인 간음이 있다. 육적 간음에 대해서 예수님은『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육적인 간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영적인 간음을 동시에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성도는 부부로 비유한다. 그래서 열처녀의 비유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와 성도는 성령으로 하나가 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 자들이 바로 영적 간음을 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을 하지만,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자들이다. 

 

예수님은 열처녀의 비유를 통해서 율법과 성령의 법을 비유하셨다. 미련한 다섯처녀는 등불을 켰으나 다른 기름통을 준비하지 못한 자라고 하고, 슬기로운 처녀는 등불을 켜고, 다른 기름통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등불은 킨 것은 교회에 초대되어 온 것을 말한다. 그러나 다른 기름통은 성령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른 기름통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처녀는 여전히 율법 가운데 있는 것이다. 니고데모처럼 거듭남의 의미도 모르면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율법에 얽매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말해준다. 율법에 묶여있는 사람과 거듭난 사람이다. 다시 신령한 몸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모두가 율법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옛사람은 죽어야만 한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은 예수와 함께 못박혀라는 것이다. 로마서 6장 8-9절에서『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육적 마음이 죽은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받은 몸이 죽으셨다. 그와 함께 죽은 자는 마음이 죽은 것이 아니라 몸이 죽은 것을 믿어야만 한다. 미래 육이 죽을 때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현재에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부모로부터 받은 육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영적 간음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은 영적 간음죄를 짓는 것이다. 

 

신명기 5장 19절「도둑질 하지 말지니라」

도둑질하는 것은 실제 행동으로 옮긴 것도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마음에 품고 사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바로 마음 속의 탐욕인 것이다. 이 탐욕이 행동으로 옮긴 것이 도둑질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이 계명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에 있는 탐욕의 죄성을 발견하도록 하셨다. 

 

사탄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의 것을 훔치려 했던 자들이다. 사탄을 따라간 자들은 다 도적질하는 자들이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행위는 하나님 나라를 도적질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사탄은 하나님 말씀을 도적질하고 있다. 하나님 말씀을 인간의 시험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가 예수님을 광야에서 시험한 것도 모두 성경 말씀을 도적질하여 시험한 것을 알 수 있다. 사탄은 광명한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성경말씀을 왜곡하여 진리인 것처럼 말하는 자들도 모두 성경 말씀을 도적질 하는 자들이다.

 

사탄이 원하는 것은 자기 자식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미혹하는 것이다. 모든 진실을 감추어야만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 외에는 모든 진실을 깨달을 수 없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내가 길이요 진리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에게로 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사탄은 모든 인간 속에 있는 영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자에게 안식을 주신다. 그게 하나님의 일이시다. 요한복음 5장 17절에서『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하나님의 일은 무엇인가? 요한복음 6장 28-29절에서『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지 못하게 만든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지 못하도록 하고,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거짓마음을 심는다. 성경에 의하면 아들의 말을 믿기만 하면, 의를 이룰 수 있는데, 사탄은 절대 이룰 수 없다고 말을 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음에도 인간은 육신의 눈으로 사탄의 말을 따라가는 것이다. 사탄은 세상의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보려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율법을 바라보면서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살펴보게 만든다. 그리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결단도 하고 노력도 하게 한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날마다 죄를 반복적으로 회개해야만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얻게된다는 것이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그렇듯하다. 

 

『아들을 믿는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날마다 죽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사탄의 미혹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옛사람이 죽을 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며, 하나님이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성경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책이다. 구약은 오실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신약은 오신 그리스도를 증언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다시 하나님 나라로 복귀시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며, 언약이시다. 사탄은 모든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로 복귀하지 못하도록 속인다. 그리스도가 아니더라도 구원의 길이 있다고 속인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기로 말만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회개의 말을 하지 않으면, 속이는 자가 된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속이는 자가 된다. 회개는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깨닫고 돌이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탄의 미혹을 따라 세상에 들어간 하나님 나라의 영들이 그 육체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에, 육의 몸(옛사람)을 벗고 영의 몸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육의 몸이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옛사람(탐욕)이기 때문이다. 

 

신명기 5장 20절「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거짓말하는 속성은 마음 속에 탐욕 때문이다. 탐욕이라는 마음의 결정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사탄은 미혹하고 속이며, 거짓말하는 자다.  사탄은 인간들에게 악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래서 죄를 짓게 만든다. 그 이유는 사탄의 종이 되게 하기 위해서다. 예수님이 사탄에 붙잡힌 바리새인들에게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한1서 2장 18절에서『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요한1서 2장 22절에서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요한1서 4장 3절에서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한2서 1장 7절에서『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는 100여년 전 청교도들의 기독교와는 너무나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거짓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말씀이 거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편리하게 생각하겠끔 와전시키고, 거짓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식으로, 영접기도하면 구원받는다는 식으로 거짓복음을 퍼뜨리는 것이다. 자기들이 만드는 기독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식으로 배우고 경험하고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된 것처럼 생각하지만 거듭나지 않으면, 거짓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독교에 속아서는 안된다. 성경의 말씀을 확인하고 그 말씀이 믿는다고 하는 사람에게 거해야만 하는 것이다. 

 

세상 나라에 적응된 기독교로서는 거듭날 수 없다. 세례가 죄를 씻는 것으로 말하는 기독교로는 거듭날 수 없다. 로마서 6장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으며,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면 예수의 피로 다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로마서 6장 7절에서는『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라고 말한다. 성경이 왜곡된 것이 아니라 성경을 왜곡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 왜곡하여 말하고 있다. 그래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신명기 5장 21절「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골로새서 3장 5절에서『탐심을 우상이라』고 말한다. 탐심이 있는 자는 우상숭배하는 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4장에서 사탄은 대담하게도 예수님을 시험할 때, 하나님의 자리를 탐내도록 유도하는 것을 본다. 근본적으로 사탄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탐심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탐심은 법 이전에 양심의 문제다. 탐심은 양심을 더럽히며, 죄악에 빠지게 하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탐심을 죽이라고 말씀하신다. 

 

탐심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세상에 대해서 죽으라고 말한다. 요한1서 2장 15-16절에서『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한1서 5장 4절에서는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거듭나는 자 외에는 아무도 세상을 이길 자가 없다는 말씀이다. 거듭나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난 자를 말한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2장 15절에서『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누가복음12장 16-21절에서『사람들이 재물을 쌓아두지만, 하나님이 생명을 거두어 가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비유적으로 말씀하셨다. 계속하여 재물 때문에 고민하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그런데 재물이 부족하면, 생활할 수 없는 세상이다. 하나님은 재물을 탐내지 말라고 하시고, 인간은 재물을 쌓아두어야 흡족하다고 생각한다. 사탄이 주는 탐심은 인간을 파멸로 이끌기 때문이다. 사탄을 따르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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