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장 25-26절『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프뉴마토스)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가 기생 라합을 비유로 들은 것은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과 동일 선상에 놓고 보는 것이다. 기생 라합이 행한 일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대하여, 죽음을 각오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라합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행한 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운 것이다.

 

프뉴마토스(πνεύματος)는 영(성령)을 의미한다. 성령이 함께 하지 않아 영이 죽어있는 몸을 의미한다. 행함(사역)이 없는 것은 영을 살리지 않는 사역(세상적인 사역)이며, 이 사역이 없는 믿음은 역시 영적으로 죽은 믿음이라는 것이다. 즉 호로고스의 믿음이 아니라 자기가 믿는 믿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1장 5절에서「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살몬은 여리고성을 정탐하러 간 두명 중의 한 사람으로서 기생 라합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았는데, 후에 다윗의 계보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진다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 족보에 다섯 여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다말과 라합, 룻, 밧세바, 마리아인데, 이중 라합과 룻은 모두 이방여인이다.  이 여인들이 한결같이 흠이 있는 사람들이고, 이런 인물들을 통해 다윗 왕가가 생겨나고 이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나라를 잃었으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그저 육신의 혈통만으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육신의 혈통을 따른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세워지는 새로운 이스라엘, 영적 이스라엘의 등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출애굽 2세대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여호수아는 정탐꾼 두명을 여리고에 보낸 것이다. 그러나 정탐꾼들은 들어가자 마자 어려운 상황을 당면하게 된다.

 

라합이라는 기생의 집에 들어간 정탐꾼들을 여리고의 어떤 사람이 보고 왕에게 고발한 것이다. 그러자 여리고 왕은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정탐꾼을 잡으러 보낸 것이다. 위기가 닥쳤다. 왕의 사람이 정탐꾼들을 찾으러 온 것이다. 그러나 라합은 이미 정탐꾼 두 사람을 지붕에 숨겨두고 이미 떠났다고 거짓말을 해서 위기를 모면한다.

 

그런데, 왜 라합은 그들을 숨겨주었는가? 여호수아 2장 9절에서 말한다.「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라합은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가나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알고 있었다. 히브리서 11장 31절「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성경에서 기생 라합이 하나님의 약속을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있지만, 그녀는 분명히 그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은 세리, 창녀,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고, 그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다. 기생 라합은 오늘날 죽어야 할 모든 죄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언약의 말씀을 믿고 나아간 것처럼, 신도들 또한 그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는 믿음을 가지고 구원을 이룬 자들이 된다.

 

가나안 땅은 원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시고자 한 땅이었는데, 야곱과 그의 열두 지파의 가족들이 모두 애굽으로 가서 정착하므로, 마치 들풀이 자란 것처럼, 가나안이 우상의 지역으로 타락하고 만 것이다. 기생이라는 직업이 그와 같은 모습이다. 모두가 죽어야 할 타락의 모습들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하나님이 기생 라합을 건져주시고, 그녀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연결 기회를 주신 것이다.

 

비록 성도들 또한 세상에서 보잘 것 없고, 하나님 보시기에 타락한 인간들이지만,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므로, 그 소망이 더 큰 은혜로 다가온 것이다.

 

라합은 거짓말 하면서 까지 정탐꾼들을 숨겨주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홍해의 기적과 아모리 사람 두 왕 시흔과 옥의 죽음을 들었으며, 둘째로는『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고 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장정만 육십만 정도가 되었고, 가족까지 합하면 약 이백만 정도되는데, 그들이 열가지 재앙을 보았고,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을 목격했음에도, 아낙자손이 두려워 하나님의 약속을 져버린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은 그들이 생각하는 만큼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 속에 생각하는 만큼의 그려놓는 형상으로서 하나님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요구하기도 하고, 불평하기도 하고, 떼를 쓰기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기생 라합은 직접 그런 기적을 목격하지도 않았고, 직접 언약을 듣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믿음은 어디서 온 것인가?

기생 라합은 가나안의 이방인이다. 그녀가 이스라엘 정탐꾼에 협조를 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약속받는 것은 불확실 하지만, 그녀는 이것을 분명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구원과 이스라엘의 가나안 점령을 연계시키고 있다.

 

여호수아 2장 12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헤세드)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헤세드)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샤바) 내게 증표(에메트 오트)를 내라 헤세드는 경건, 인자, 선행 등으로 사용된다. 샤바는 완전하다, 맹세하다. 에메트는 진리, 분명한. 오트는 신호, 깃발 등이다.

선대하는게 조건부로 여겨진다. 내가 이렇게 선대했으니, 너희들도 나에게 선대하라는 말이다. 신앙에 있어서도 나는 이렇게 노력했으니, 나는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말과 유사하게 들린다. 비록 기생 라합이 이렇게 말했지만, 정탐꾼의 답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됨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종결된다.

 

여호수아 2장 20절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우리의 삶이 너희를 위한 것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너와 나의 목숨이 같아지는 것이다. 같이 죽고, 같이 사는 그런 관계가 되는 것이다. 기생 라합과 정탐꾼은 서로 하나가 되는 관계가 되었다. 성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믿음을 의미한다. 율법주의로서 행함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믿음이다. 즉 율법주의를 버리고 믿음으로 나가는 행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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