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제의 규례
면제의 규례
신명기 15장 1-4절「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아사 쉐미타)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카라 쉐미타 야훼) 이방인에게는 네가 독촉하려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준 것은 네 손에서 면제하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아사는 행하다, 낳다, 부여하다, 새기다. 쉐미타는 떨어트리다, 보내다, 쉬게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 샤맡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면제, 중지(안식) 등의 의미가 있다.
면제는 안식과 연관이 있다. 모든 백성들은 안식을 하지 못하므로, 안식에 대한 규정을 통해서 안식하라는 것이다. 칠일째 안식이라는 말은 창세기 2장 1-2절에서도 등장하는데,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의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천지와 만물에서 만물은 챠바(군대)이다. 군대는 천사를 의미한다. 하늘의 군대와 땅의 군대가 다 편성이 완료되었다는 것이다. 범죄한 천사에 대해서 그들이 세상에 인간들이 되어 하늘의 군대와 마찬가지로 땅에서 하나님의 군대로 되었다는 것이다. 땅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것이 천국을 이루는 것이고 칠일에 이루어진 것으로 안식을 의미한다. 신약에서 안식은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안식하는 것이다. 안식하는 자는 하나님께 빚진 자가 된다. 그래서 그 빚진 자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에서 다른 사람에게 빚을 탕감해 주라는 것이다. 이 말은 그들도 하나님의 군대가 되게 하라는 것이다.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로 번역된 카라 쉐미타 “일명 야훼는 여호와의 면제로 부른다” 이다. 여호와의 면제는 안식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상징한다. 그래서 면제는 곧 안식을 원인으로 하는 것이다.
7일을 주기로 그 끝 날을 안식일이라고 하듯, 매 7년을 주기로 그 끝 해를 안식년이라고 한다. 안식일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듯 안식년의 주인 역시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면제년(안식년)에는 빚진 자의 빚을 면제하고 더 이상 갚으라고 독촉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레위기 25장 2-5절「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가꾸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하나님이 안식년을 주신 이유는 이 땅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뿐만 아니라 사람이 두 발 디디고 살아가는 땅에도 안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땅이 쉼을 얻기 위해서는 주님의 백성이 안식년을 지켜야 땅도 쉼을 얻기에 땅의 안식을 사람에게 명령하시는 것이다. 땅이 생명력을 회복하고, 땅이 식물을 자라게 하는 힘을 회복하는 것은 그 땅을 경작하는 사람이 안식년을 지킴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사람에게도 안식을 주고 그 사람이 살아가는 땅에도 안식을 준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그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 복되고, 그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 자연, 주변 사람들까지 복되게 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안식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 땅에 있는 존재들에게 인간들은 이 땅에서 안식할지 모르나 참 안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씀해주신다. 하나님이 율법에서 안식일을 지켜라 라고 하신 것은 애굽으로 부터 나와서 시내산에 있을 때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 가두신 이유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하신 것이였다.
애굽에서 종되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하셨다. 애굽에서는 고통이었는데, 하나님이 건져주셨으니 안식을 주신 것이다. 애굽에서 나온 것이 안식의 시작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안식의 완성인 것이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첫째 이유는 애굽에서 종되었지만, 지금은 종이 아니다 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안식을 믿지 않는 것이다.
구약에서 안식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참 안식을 위한 연습과정과 같다. 안식을 지키라고 하신 두번째 이유는 대대 후손과의 언약의 표징이라는 것이다. 언약은 하나님의 약속이며, 영원한 언약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표징이라는 것이다. 안식일은 애굽을 나와서 애굽을 벗어났다 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지키는 것은 영원한 언약의 표징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안식을 받을 것이다 라는 것을 믿고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는데, 지키지 않는 것은 애굽으로 부터 고통 가운데 해방되었고, 앞으로 영원한 참 안식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안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돌에 쳐 죽이라고 하신 것이다. 돌에 맞아 죽은 것을 보고 백성들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영적으로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돌에 맞아 죽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생명을 받아서 영생의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원한 안식을 백성들이 받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바라보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식일을 지키라고 한 이유는 두가지인 것이다. 애굽으로부터 해방된 것과 장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희년의 시기에 대한 정확한 날짜를 규정한다. 즉 칠년에 한번씩 오는 안식년이 일곱번이 지난 49년째 7월 10일인 속죄일에 큰 나팔을 부는 것으로 희년이 선포되었다. 희년이 속죄일에 선포되었다는 것은 속죄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의 화해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희년을 오십년이 되는 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시작되는 해와 마지막 해를 동시에 함께 세는 방식에 의해서 오십년이 된 것이다. 이 해는 거룩한 해이며 드로르(דְּרֹ֛ור :자유 또는 해방)가 선포되었다. 드로르(דְּרֹ֛ור)라는 단어는 아카디아어의 안두라루(An-duraru:부채로 부터 해방)에서 온 차용어인데,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때에 따라서 왕이 이러한 면제령을 내리곤 하였다. 첫째는 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땅을 빼앗겼던 사람들에게 드로르가 선포되어 그 땅을 돌려 받았다. 둘째는 모든 히브리인 노예에게 드로르가 선포되어 희년에 자유의 몸이되었다. 셋째는 땅에 드로르가 선포됨으로 땅을 경작하지 않고 땅에 해방을 주었다.
이러한 자유의 규정은 그 땅에 사는 모든 주민, 즉 경작지를 소유한 정착민들에게 주어졌다. 이들은 희년이 되면 그 사이에 떨어져 있었을 자기들의 소유지와 지파로 돌아 가야 했다. 이들이 소유지와 지파로부터 떠나야 했던 이유가 흔히 부채때문이었으므로, 부채로부터의 해방은 귀환의 전제가 되었으며, 그와 더불어 원래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질서의 복귀를 위한 전제 조건이었다.
희년의 영적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희년을 히브리어로 요벨(יֹובֵ֥ל)이라고 하는데, 요벨은 수양의 뿔이라는 뜻이다.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부는 날이라는 뜻이다. 수양은 희생 제물을 의미한다. 그리고 뿔은 권세를 나타낸다. 수양의 뿔로 나팔을 분다는 것은 희생 제물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는다는 소식이 희년의 나팔소리가 되는 것이다. 유월절 어린 양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구속을 받는다는 복음이 바로 희년의 나팔소리인 것이다. 이를 세례요한은 잘 증거해 주었다.
희년의 나팔이 울려 퍼지면 매였던 종들이 풀려나고, 잃어버렸던 토지도 돌려받게 된다. 희년은 종을 해방 시키고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다시 되찾는 날이다. 희년이 되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희년의 나팔 소리는 가난하고 매인 종들에게 구원의 소리인 것이다. 토지를 잃어버리고 가난하게 살던 자들과 억울하게 종으로 팔려서 종노릇하던 자들은 희년을 학수고대하고 기다렸다. 이 날을 소망하면서 살았다.
이것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는 것과도 같다.그래서, 성도는 모든 수고와 슬픔과 고통을 털어버리고 눈물 없고 고통 없고 아픔이나 사망이 없는 하나님 나라로 가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희년은 신약의 예수님의 부활 과도 같은 것이다.
희년의 나팔은 7월 10일 속죄일에 불었다. 속죄일이 되면 대제사장이 하나님을 만나러 지성소에 들어갔다. 대제사장은 일 년 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하나님께 보고를 했다. 보고를 마치면 하나님께서 영광의 구름으로 임재하셔서 환영해 주셨다. 그럼 제사장들은 일제히 양각 나팔을 불면서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일 년 동안의 모든 죄를 탕감 받았음을 알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받아 주셨음을 알리는 소리인 것이다.
속죄일에 부는 나팔 소리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한다는 소리이다. 희년의 나팔 소리는 방방곡곡으로 울려 퍼지게 된다. 온 나라는 축제가 시작이 된다. 속죄일의 나팔 소리는 안식을 주는 기쁨의 소리인 것이다. 기쁜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 분과 연합된 성도는 함께 부활하여,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고,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심령 속에 세워진 지성소로 재림하여 들어오시는 것이다. 이것이 기쁜 소식이 된다.
누가복음 4장 16-21절에서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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