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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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야고보서 5장 12절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여기에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에서 헬라어 원문에는 생각이라는 단어는 없는데, 번역하는 자가 끼워넣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그러면 그렇다고 말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Yes(예), 하겠습니다』로 받아드리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No,(우리 말:예),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적 관습의 차이에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그래서 호로고스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은 맹세가 필요없다.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고 하는 자들이 맹세를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 33-37절에서도 맹세에 대해서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맹세에 대해서 『지키라』는 것이 구약성경의 가르침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백성들이 자원하여 맹세하는 것은 금하지 않았으며, 만약 맹세했다면 반드시 지키라고 명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도무지 하지 말라고 했으며, 심지어 악에서 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맹세 자체를 무조건 금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위선적 형식적인 맹세를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에게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율법의 규정을 자기들 편리한 대로 악용하는 잘못된 습관을 당장 그만 두라는 뜻이었다.
예수님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맹세를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을 예리하게 지적하셨다. 그들은 금과 예물(성전에 바칠 헌물)을 걸고 맹세한 것은 꼭 지키되, 성전과 제단에다 대고 말로서 한 맹세는 꼭 지킬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예수님은 금보다 성전이, 예물보다 제단이, 성전과 제단보다 하나님이 더 크다고 말했다. 모든 맹세는, 돈을 걸었든 말로만 서약했든, 결국 하나님께 행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맹세라도 최선을 다해 지켜야지 맹세 중에 어떤 것은 지키고 어떤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야고보서 5장 13절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헬라어에서 기도는 두가지로 표현된다. 프로슈케와 유케다. 프로슈케도(προσευχέσθω)프로슈케는 프로스(영어:toward ~향하여)와 유케의 합성어다. 프로스는 하나님의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스유케는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을 기도하는 것이다. 유케는 어떤 사람이 자기가 믿는 신에게 소원을 비는 것이다.
성도가 영이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는 내용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을 듣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전도를 하다가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께 어떻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행하면 고난을 벗어난다는 것이다.
야고보서 5장 14절『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프로슉사스도산)』
프로슉사스도산(προσευξάσθωσαν)은 보좌에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이다. 병이 왜 들었는지, 병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다. 장로들은 휘포모네(하나님 보좌에 나가는 것)가 되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는 또한 프로슈케(보좌 앞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의 기도를 해야 한다.
병자들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언약관계에서 멀어진 자를 의미한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한 것이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백성들이 정탐꾼을 보내게 해 달라고 모세에게 요구하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 그런데, 열두 정탐꾼이 돌아와서 하는 말이 『들어가면 우리는 다 죽는다』라는 것이다. 가나안에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 같다라는 말로 말한 것이다. 성경은 이에 모든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하며 울었다고 한다. 열두 정탐꾼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의 육의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영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세상을 바라보면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약 이백만명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믿은 자가 단 두명이었다는 말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표적은 마치 사십년간 광야에서 헤메다가 죽은 자가 예수의 이름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는 부활생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부활생명은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하늘의 생명을 얻어서 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나면서부터 못걷게 된 사람에 대해서 사도행전 3장 6-8절에서『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죄를 사해주고 병을 치료하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병을 치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면적으로는 부활생명을 주어서, 죽었던 영을 살려내는 것을 의미한다.
유대인들과 병이 나은 자는 하나님의 권능의 표적을 깨달았으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깨닫지 못했다. 권능을 깨달은 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그렇지 못하고 영적인 눈이 닫혀있는 자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헬라어 성경은 사십세가 넘었더라 라고 되어 있다. 사십이라는 말은 출애굽한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사십년간 헤메다가 다 죽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해 일어서지 못하는 영적으로 죽은 자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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