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가 말하는 믿음의 기도와 엘리야의 기도

 

야고보가 말하는 믿음의 기도와 엘리야의 기도

 

야고보서 515-18절『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성도는 현재 부활함을 믿는 자이고, 그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져 그리스도가 호로고스로 임재하신 것을 믿는 자이다. 그래서 성도는 프로슈케 기도를 한다. 프루슈케 기도를 하지 않는 신도들은 초신자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심령 속에 호로고스의 임재하심으로 기도(프로슈케)하지 못하는 초신자들은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육적으로 연약하여 항상 죄에 노출되어 있음을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죄로 오염된 육체가 병이 들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의를 구한 것 같이 육체의 병도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기도하는 순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고, 처음 믿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죄 사하심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병든 자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죄를 사해주심과 같이 병도 고쳐달라는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기도다. 유케의 기도는 프로슈케의 기도와는 다른 차원이지만, 서로 모여 기도할 때,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유케의 기도는 프로슈케의 임재기도를 모르는 신도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여기서 의인은 선지자 엘리야를 의미한다. 엘리야가 기도하는 것은 프로슈케(보좌에 나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기도를 하는 선지자였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는 자가 의인의 기도라는 것이다.

북이스라엘 아합왕때 산지자가 엘리야였다. 아합은 시돈 왕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여, 바알을 섬기고 하나님께 죄악을 저질렀다. 그래서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하여 3 6개월 동안 비를 내리지 않게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엘리야는 아합왕을 찾아가 바알 선지자 400, 아세라 선지자 450명을 갈멜산으로 오도록 하여 누가 참신이지 알게 하자고 했다. 이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알과 이세라 신에게 온갖 소리를 내어 외쳤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엘리야가 기도를 할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우상의 제단을 다 태워버렸다. 가짜 선지자들을 다 죽게 했다. 그리고 엘리야는 백성들을 위하여 다시 하나님께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한 후 비가 다시 내린 내용이다. 엘리야가 하는 기도(프로슈케)는 그 땅에서 우상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성전을 회복하는 기도였던 것이다.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다가 고치지 못하자, 그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와서 제자들이 고치지 못하는데, 예수님이 직접 고쳐달라고 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패역한 자들이여 라고 말하고, 아이의 병을 고쳐주셨다. 이후 제자들은 왜 우리는 고칠 수 없는가라고 예수님께 물었더니 예수님은 오직 답은 기도(프로슈케)뿐이라고 하신 것이다. 제자들은 유케의 기도만 할 뿐이었다. 마가복음 927-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프로슈케)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세례요한과 엘리야의 관계를 말씀하신 후에 바로 귀신들린 자를 치료하신 이야기에서 등장한다. 그런데, 마태복음 1720절에서는 제자들이 왜 자신들은 귀신을 쫒아내지 못하는가 라는 질문에,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겨자씨 만한 믿음과 프로슈케의 기도와 연결된다. 기도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믿음에 대해서,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믿음은 자기확신과는 다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의믿음은 자기 확신에 근거하고 있다. 믿음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임마누엘 신앙을 의미한다. 겨자씨만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의미한다. 

갈라디아서 323절에서『믿음(텐 피스틴)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여기서 텐 피스틴(τν πίστιν 믿음)이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자를 상징한다. 이전의 옛사람은 죽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율법 아래 있다는 말이다.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면, 법이 필요없는 것이다. 법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가? 없다는게 문제다. 그래서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될 때(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성령이 성도를 인도하신다.

믿음으로 새생명으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육체가 있는 이상, 세상에서 어려움은 있을 것이다. 세상의 법에 대해서도 위반하는 사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여러 행동들, 누구나 신자라면 겪는 일일 것이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므로 이러한 상황이 있지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라는 약속을 지키신다. 문제는 성도가 영적 성장에 이르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신도들은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성화되어 가야 한다고 믿는다. 성화라는 말은 거룩하고 성결하다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성화되어 간다고 믿으면 이는 영지주의의 한 분파가 된다. 아무리 성령의 인도를 받지만 성화되어 간다는 말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거룩하고 성화된 자라고 인정하지만, 성도들의 행동은 그렇지 못하므로 성숙된 사람으로 살아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는 기도를 통해서 점차 변화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이것은 보혜사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영적으로 젖먹이에서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것이다. 성화라는 말은 오해받기 쉬운 말이 된다. 성화가 아니라 영적 성장이다.

하나님은 영적 성장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간섭하시면서 영적 음식을 주시고, 가끔 사탄의 가시를 통해서 찌르시기도 하신다. 결국 심령 속의 성전인 지성소 안으로 들어와 프로슈케의 기도까지 인도하시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와 연합되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되어 현재적 부활을 믿지만, 영적 성장이 이르지 못하면, 성도는 심히 환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슈케 기도를 하라는 말이다. 귀신을 쫒아내는 일은 세상의 기복신앙을 쫒아내라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라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야고보서 19-20절『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미혹은 율법주의, 인본주의, 영지주의를 의미한다. 초대교회 뿐만 아니라 오늘날 대부분 교회에서 이 미혹이 확산되어 있다. 그래서 그것을 깨닫고, 미혹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다른 형제들도 벗어나게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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