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베드로전서 1장 17절『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사역은 세상에서 하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을 의미한다. 나그네는 인생이 나그네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떠나 세상에 들어왔으므로 나그네인 것이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만일 돌아가지 못한다면, 둘째 사망에 처해질 것이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하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모두 죽었던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18-19절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헛된 삶의 방식이란 율법주의를 의미한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그리스도를 발견하라고 하는데, 율법주의에 빠져서, 율법만 지키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헛된 사역인 것이다. 날마다 드리는 제사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발견했으면, 영원한 대속을 받았을 것이다. 그 대속은 피의 대가를 통해서 믿는 사람들에게 속량하신 것이다.
보배로운 피는 생명이다. 십자가의 순종을 통해서 새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말씀이신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므로 모든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예수님이 생명의 대가를 치르므로(순종하므로), 사탄에게 붙잡혀 있던 자에게 자유를 주고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20-21절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말세라고 번역된 크로논(χρόνων)은 예수님의 초림을 의미한다.『창세 전에 미리 알린 바 되나, 예수님이 성육신하여 너희를 위해 나타내신 바 되었다는 것이다. 창세 전에 미리 알린 바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예정이다. 에덴동산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을 옷을 벗기고, 그 영들이 흙속에 가두어서 인간이 되게 하고, 그들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스스로 의를 이룰 자는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돌아가려는 자를 위해 이 땅에 성육신하여 십자가에서 그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여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 비유가 탕자의 비유다. 누가복음 15장 11-32절에서 탕자의 비유를 설명하신다. 탕자는 자기의 분깃을 아버지께 요구했다. 이는 천사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을 상징한다. 먼나라는 이 세상을 의미하며, 방탕한 생활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자기의 의를 이루어보려고 하는 모습이다.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의 열매에서 돼지는 율법을 지키는 자를 의미하며, 쥐엄나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같은 개념이다. 바로 율법이다. 헬라어 원어에는 쥐엄나무의 열매가 아니라, 껍질로 되어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속에는 생명나무가 감추어져 있는데, 껍질만 먹는 것이다. 즉 율법주의에 빠져, 율법 만 지키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배를 채울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를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복음 15장 21절에서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회개하여 돌아오는 자를 측은히 여기시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22-23절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테 휘파코에 테스 알레데이아스(τῇ ὑπακοῇ τῆς ἀληθείας)는 우리의 순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순종하시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생명(ψυχὰς soul)이 깨끗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부활생명이 깨끗하게 되고, 영이 살아나므로, 거짓이 없으며, 형제의 영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형제 사랑이다.
말씀으로 된 씨는 그리스도이다. 디아 로구 존토스 데오(διὰ λόγου ζῶντος Θεοῦ 하나님의 살아있는 로고스를 통해서) 그래서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24절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육체는 육체로 비롯된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율법주의, 영지주의, 인본주의를 의미한다. 이들은 헛되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만 영원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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