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베드로전서 3장 7절『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그노신(γνῶσιν)은 체험으로 알게되는 것(히브리어 야다와 같다) 남편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서 살아가는 것처럼 아내를 대하라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처럼 생명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께 기도가 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장 8-9절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유스플랑크노이(εὔσπλαγχνοι)는 동정하다는 의미이고, 쉼파데이스 συμπαθεῖς 는 불쌍히 여기다는 의미다. 그리고 형제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형제는 영적 공동체를 말한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셨다. 그것이 예수님이 행하신 사랑의 응대였다. 선으로 악을 이기신 것이다. 사랑으로 미움을 덮으신 것이다. 박해로 말미암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로 흩어져, 떠돌이 신세가 된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먼저 가정을 세우라고 권면했다. 그것이 곧 교회를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3장 10-11절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좋은 날은 구원을 얻는 날이다. 아가다스(ἀγαθὰς)는 선을 하는 것으로 번역되었는데, 복음을 씨를 퍼뜨리는 일이다. 입술은 화살모양이다. 입술로 거짓을 말하거나 악한 말을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활을 쏘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활을 통제하는 일은 인간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대해서는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성령의 법 아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베드로전서 3장 12절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오늘날 이신칭의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의를 얻는다 라는 이론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으나, 하나님이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죽으시고, 십자가의 예수와 연합되는 자를 하나님이 구원시켜 의로운 자가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옛사람이 죽고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의인이라 칭하시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자들 중에 의인은 하나도 없으나, 오직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의인이라 칭함을 얻는다. 그러나 의인이라 칭함을 얻어도,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여러가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인들의 기도를 들으신다.
베드로전서 3장 13-14절『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선을 행하는 것으로 번역된 헬라어로 아가두(ἀγαθοῦ)는 사역으로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여 그들에게 십자가를 심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남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라는 그런 의미가 아닌 것이다.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 때문에 여려움을 겪는 것은 복이라는 것이다. 파스코이테(πάσχοιτε)는 고난이라기 보다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가 힘든 여정이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초대교회 당시는 교통이 불편하고 이동하는데, 여러가지 제약을 받았다.
베드로전서 3장 15-16절『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누군가가 그리스도인에 대한 소망을 묻는다면, 항상 준비해야만 한다. 소망은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원래 인간 속에 있는 영은 하나님 나라에서 있다가 쫒겨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탕자의 비유처럼 다시 돌아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라우테토스는 겸손한 자세로, 포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이다.
선한 양심은 남을 돕는 깨끗한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보다, 복음을 전하므로서 죽었던 영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아가덴(ἀγαθήν)은 죽었던 영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이다. 선행으로 번역된 것의 원어는『텐 아가덴 텐 크리스토 아나스트로펜 τὴν ἀγαθὴν ἐν Χριστῷ ἀναστροφήν』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남을 위한 선이라는 것이다. 이런 복음을 전하면 비방을 하지만, 결국 그들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베드로전서 3장 17절『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 받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든 과정을 견디는 것은 세상을 위해 힘든 일을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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