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히브리서 12장 1-2절『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디 휘포모네스)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테스 피스테오스 아르케콘)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프로케이메노스) 기쁨(카라스)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휘페메이넨)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많은 증인은 믿음의 선진들을 의미한다. 디 휘포모네스(δι’ ὑπομονῆς)는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아가 머무는 것(안식)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해결하셨다. 그래서 성도는 더 이상 이것들에 얽매이지 말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심령 속에서 임재하신 성전이다. 여기에 나아가는 것이 마치 경주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심령 안에서 임재하신 호 로고스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분이 믿음을 주시기 때문이다. 믿음은 인간이 자기가 믿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은 바로 씨의 약속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씨의 약속이 된다. 예수님이 믿음의 우두머리가 되시며, 성도로 하여금 온전한(완성된) 믿음에 이르게 하신다. 그래서 이 믿음을 주신 예수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테스 피스테오스 아르케콘(τῆς πίστεως ἀρχηγὸν)은 믿음의 우두머리(리더)다. 프로케이메네스 아우토 카라스(προκειμένης αὐτῷ χαρᾶς)는 그 앞에 놓여있는 기쁨을 대신하여 라는 의미다. 『기쁨(카라스)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휘페메이넨)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라는 말에서, 참으사로 번역된 휘페메이넨은 기쁨과 연결된다. 누구를 위한 기쁨인가 하면, 바로 휘포모네가 되는 성도를 위한 기쁨이라는 것이다. 성도가 휘포모네를 하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기쁨이 되는데, 이를 위해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더니 라는 것이다. 휘페메이넨을 참으사 라고 번역한 것이 잘못된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3절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휘포메메네코타) 이를 생각하라』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이 있지만, 휘포모네(성도가 심령 속의 보좌에 나아가는 것)하게 했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휘포모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참으신”으로 번역된 휘포메메네코다(ὑπομεμενηκότα)는 보좌에 들어가는 인내를 의미한다. 프슈카이스(ψυχαῖς) 는 육적 생명이다.
히브리서 12장 4-5절 『너희가 죄(하마르티안)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파이데이아스)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엘렝코메노스)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하마르티안(ἁμαρτίαν)은 과녁을 벗어나다 라는 의미다. 히브리어에서 죄는 길을 잘못들다 라고 되어있다. 죄는 하나님을 벗어나는 것이 모두 죄라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나 인간이 된 것이 죄라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사탄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죄의 몸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벗고, 하나님께 나가라는 것이다. 죄와 싸우는 개념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휘포모네)이다. 휘포모네를 하지 않는 자는 여전히 옛사람이 성도를 괴롭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간의 비유로 설명될 수 있다. 거듭나서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을 아이의 태어남으로 비유될 수 있다. 갓난 아이는 부모를 잘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는 점차 부모를 알아보지만, 부모가 바라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아이가 커서 사춘기가 되면 아이의 행동은 부모가 바라 볼 때, 점점 더 심각해진다. 그래서 부모는 규제와 훈육을 통해서 아이를 통제하고 가르치려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부모가 아이를 버리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아이가 성년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부모가 사업가라면 성년이 된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줄려고 할 것이다. 휘포모네는 부모와 자식간에 인격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인격적 대화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가 형성된다. 여기에서 죄는 아이가 부모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파이데이아스(παιδείας)는 훈계라는 의미다. 엘렝코메노스(ἐλεγχόμενος)는 틀린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꾸지람 하듯이, 휘포모네를 할 때, 하나님이 성도에게 잘못된 것이 있으면, 틀린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6-7절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아가파) 자를 징계하시고(파이데이아스:훈계)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마스티고이)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휘포모네테)은 징계를 받기(에이스 파이데이안)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앞부분에서, 주께서 사랑하시나 그를 훈계하시고 라는 말이다. 아가파는 피값을 주고 산 자, 성도의 입장에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다시 태어난 자다. 거듭나서 성령세례를 받으면, 그 때부터 하나님은 영적 훈련을 시키시는 것이다. 마스티고이(μαστιγοῖ)는 사랑의 매와 같은 것이다. 파이듀에이(παιδεύει)는 훈계이다.
휘포메네테(ὑπομένετε)는 참음이 아니라, 심령 속에 계시는 보좌에 나아가는 것이다. 에이스 파이데이안(εἰς παιδείαν)는 사랑의 매라고 볼 수 있다. 즉 사랑의 매 속에서, 휘포모네가 되는 것이다. 왜 주님이 사랑의 매를 성도들에게 드는가? 세상 속에서 자기의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자기의 일이란, 죽었던 영을 살리는데는 관심없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의 모습이다.
히브리서 12장 8-9절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육신의 아버지와 하나님 아버지를 비교한다. 사랑의 매가 없다면,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육신의 부모에게도 순종하는데, 왜 하나님에게는 더욱 순종하지 못하느냐 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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