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믿음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믿음
베드로전서 1장 1절『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나그네는 소아시아 지역 등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들이다. 프로그노신(πρόγνωσιν)은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서 아는 것이다.(히브리어 야댜와 같은 의미) 프뉴마토스(Πνεύματος)는 소유격으로『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이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받는 자는 순종(휘파코엔 ὑπακοὴν)과(카이:접속사)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란티스몬ῥαντισμὸν) 속으로 들어간다. 순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순종이다. 그래서 순종이라는 말은 피뿌림과 동격인 것이다. 물론 카이(접속사 그리고) 라는 말은 동격을 의미할 때가 있다. 성도가 거룩하게 되는 것은 십자가에서 피를 뿌려 하나님께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이 믿음을 가진 자가 택하심을 얻는 자들이다.
베드로전서 1장 3-4절『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아나겐네사스(ἀναγεννήσας) 는 위에서 태어난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거듭난 자는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라는 것이다. 거듭난 자는 산 소망을 갖게된다. 그런데 소망을 갖게되는 방법은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아나스타세오스(ἀναστάσεως) 는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즉 거듭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그들도 영적 부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그래서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산 소망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상속을 잇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인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5-6절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엔 카이로 에스카토(ἐν καιρῷ ἐσχάτῳ) 는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성도에게 구원을 확정하시는 그 때 라는 의미다. 구원은 성령세례로 시작하여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결정되는 것이다.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구원의 의미를 나타내려고 한 표현이다. 이 구원은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믿음에 대한 예로 출애굽한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으로 설명된다. 출애굽을 할 당시 백성들은 열가지 재앙을 보았고,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했지만, 열두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돌아와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열명은 들어가면 죽는다 라고 말하고 온 백성이 그 말을 믿고 통곡하며 밤새 울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들이 가나안에서 철병거를 가진 아낙자손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그들에게는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는 믿음인 것이다. 말로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믿음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는 믿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믿음을 소유한 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신다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육의 몸(옛사람:혼)이 죽었음을 믿지만, 현실적으로 육체가 있으므로 고난과 시련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도를 보호하신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죽는다고 믿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광야 사십년을 보내게 했다. 그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출애굽할 당시 19세 이하의 아이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을 훈련시키고, 보호하신 것이다. 가나안 땅 앞에서 통곡한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다. 그래서 가나안에 들어간 자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19세이하의 아이들,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이 가나안에서 땅을 유업으로 받은 것이다.
신도들도 예수믿고 교회다닌다고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상속받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고, 함께 부활하는 것을 믿을 때, 즉 거듭날 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이다.
페이라스모이스(πειρασμοῖς)는 죄의 유혹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시험이 아니라, 사탄이 주는 유혹이다. 유혹이 왔지만 더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기 때문에 오히려 기쁨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 더 강하게 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7절『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아포칼륖세이(ἀποκαλύψει)는 예수님의 재림이 아니라, 계시다. 거듭남과 성령세례의 관계를 잘 이해해야만 한다. 거듭남이 성령세례와 동격은 아니다. 거듭남은 물과 성령으로 이루어지며, 물에서 죽고,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다. 이게 구원의 성령이다. 내주하시는 성령이신 것이다. 성령세례는 거듭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서 성령 충만이다. 이 성령은 보혜사 성령으로 성도의 머리 위에서 역사하신다. 성도가 말씀을 전할 때 힘을 주시고 증거하게 하신다.
거듭난 자에게 성령 세례가 동시에 오기 때문에 신도들은 거듭남과 성령세례를 혼동하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성령 충만으로서, 그러나 생활 속에서 어려움이 오고, 믿음이 약화되고 할 때, 보혜사 성령은 떠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성령을 간절히 구하면 다시 오시는 것이다. 거듭난 자는 믿음의 확실함을 위해 항상 성령과 대화를 하고 그 분의 음성을 듣기를 사모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 믿음을 보고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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