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히브리서 12장 22-23절『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시내산과 같은 공의 의 무서운 하나님이 아니라, 시온 산에 계시는 은혜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교회 안에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거듭난 성도)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거듭나지 못한 신도)가 있다. 안에 있는 자는 은혜의 하나님을 만나지만, 밖에 있는 자는 공의의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시온산으로 가신 이유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러 오라는 것이다. 시온산에는 언약궤가 있으며, 그 위에는 시온좌가 있다. 동물의 희생 제사(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오라는 의미다.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의인의 영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휘포모네를 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히브리서 12장 24절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아벨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보여주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신다는 약속이다. 그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히브리서 12장 25-26절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너희라는 대상은 교회 밖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 교회 안의 유대인 신도들을 대상으로 말한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섭게 대한 이유는 백성들이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절하고, 애굽을 동경하는 그런 일들이 있었다.
그 때는 땅(시내산)에서 백성들에게 경고를 했지만, 이제는 하늘에서 경고한다는 것이다. 구약시대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징계를 받았는데, 이제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받았으면서도, 불순종하면(다른 복음을 전하거나, 복음의 진리를 다른 것과 섞는 것)을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구약시대는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진동했지만, 성도의 심령 속에 성육신 하여, 임재하는 것은 하늘이 진동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27절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이 말씀을 예수님의 재림과 연계시키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심령 속에 호 로고스의 임재하심이 없는 자들을 바꾸어 놓는 것이다. 이 전에는 믿음의 선진들은 호 로고스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성도의 심령에 성령의 역사로 호 로고스가 임재(진동하는 것으로 표현)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성전이다. 이것이 단 한번의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다.
히브리서 12장 28절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은혜는 휘포모네가 되는 은혜다. 그래서 거룩해지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다. 데우스(δέους)는 무서움으로 번역되는데, 헬라어 성경에서 차이가 있다.
(스테파누스 헬라어 성경)
διο βασιλειαν ασαλευτον παραλαμβανοντες εχωμεν χαριν δι ης λατρευωμεν ευαρεστως τω θεω μετα αιδους και ευλαβειας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왕국을 받을진대 은혜를 소유하자 이 은혜를 힘입어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넷슬 알란드 헬라어 성경)
Διὸ βασιλείαν ἀσάλευτον παραλαμβάνοντες ἔχωμεν χάριν, δι’ ἧς λατρεύωμεν εὐαρέστως τῷ θεῷ μετὰ εὐλαβείας καὶ δέους·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왕국을 받을진대 은혜를 소유하자 이 은혜를 힘입어 경건함과 두려움과 무서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넷슬 알란드에서 무서움이라는 표현이 추가 되었다. 하나님은 두려움의 대상이지 무서운 분은 아닌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29절 『우리 하나님은 소멸(카타날리스콘)하는 불이심이라』
카타날리스톤(καταναλίσκον)은 완전히 삼킨다는 의미다. 성도가 성령의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망이 생명에게 삼켜지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바울도 고린도후서 5장 4절에서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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