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와 양의 처음 난 수컷은 구별하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
소와 양의 처음 난 수컷은 구별하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
신명기 15장 19-23절「네 소와 양의 처음 난 수컷은 구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 네 소의 첫 새끼는 부리지 말고 네 양의 첫 새끼의 털은 깎지 말고 너와 네 가족은 매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을지니라 그러나 그 짐승이 흠이 있어서 절거나 눈이 멀었거나 무슨 흠이 있으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잡아 드리지 못할지니 네 성중에서 먹되 부정한 자나 정한 자가 다 같이 먹기를 노루(찌비)와 사슴(아이알)을 먹음 같이 할 것이요 오직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지니라」
이것 역시 십일조의 개념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의미는 하나님께 제물로 불태워진 자를 상징한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바, 그의 고기를 먹는 자는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였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13장 15-16절「그 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들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 이것이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토파파)가 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바로가 강팍해져서 하나님께서 열가지 재앙(심판)을 내리시는데, 열번째 재앙이 장자를 죽이는 심판인 것이다. “위로 나(모세)를 드려서 대속했다”는 말이다. 여기서 “나를 드려서” 라는 말이 히브리어 원어에는 있는데, 번역과정에서 빠졌다. 나를 드린다는 말은 유월절 어린양을 죽여서 드린다는 표현인 것이다. “나” 라는 존재가 유월절 어린양과 하나가 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유월절 어린양은 죽었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자기가 죽지 않고 있다면, 그저 구경만 하는 자들일 뿐이다. 마태복음 1장 38절에서『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여호와의 손은 권능을 의미한다. 여호와의 손은 바로에게 내린 열가지 재앙을 의미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표적이다. 표적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야만 한다.
토파파는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은혜로 나아가는 것이다. 토는 테트(율법)를 의미한다. 이마에 표를 삼는 것은 머리 속에 간직하라는 말이다. 그것이 구원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데리고 와서 다시 데리고 가신다 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소와 양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장자의 재앙에 때에 장자가 죽임을 당하지 않고 구원 받을 기억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래서 첫 새끼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건짐 받았음을 기억하게 하셨다. 그래서 항상 첫 새끼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음을 기억하라는 의미가 포함이 되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첫 새끼를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 하나님께 첫 수컷을 십일조로 드림으로서 십일조가 가르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와 첫 수컷 새끼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것이다.
첫 새끼가 태어났다고 해서 바로 중앙 성소에 갈 수 없다. 새끼가 태어나면 십일조를 드리기 위해 중앙 성소에 가기까지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도 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첫 새끼는 부리지도 말고 털도 깍지 말라고 한다. 소를 부리고 양의 털을 깎는 것은 소득이 생기는 일을 하게 한다는 의미인데, 이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첫 새끼가 하나님께 십일조로 받쳐질 때까지 잘 관리하고 키우면서 하나님 안에서 구별된 거룩함에 대해서 배우게 되는 것이다.
구별된 거룩함이란, 오직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이며, 첫새끼가 그런 것이며, 그래서 대속으로 죽음을 이룸으로 죄인이 구별된 거룩을 얻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는 자는 자기의 죽음이며, 그래서 죽음으로 구별되고 거룩함을 얻는다.
고기를 먹는 것은 부활생명을 먹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 첫 새끼를 하나님께 드리고 온 가족이 함께 고기를 먹으며 기쁨을 나누게 된다.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성도의 구속을 위한 어린 양으로 구원의 첫 열매가 되셨다. 그리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고 부활함을 믿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함께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네 성중에서 먹되 부정한 자나 정한 자가 다 같이 먹기를 노루와 사슴을 먹음 같이 할 것이요”
“네 성중에서 먹되” 이는 성전에서 먹는 제사장을 연상한다. 신약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부활의 몸을 먹고 부활의 생명수를 마시는 것이다.
찌비(카즈비 כַּצְּבִ֖י)는 노루 같은, 아이알(웨카아얄 וְכָאַיָּֽל)은 암사슴으로 번역되지만, 암 사슴과 같이(כָ) “뿔이 있는 짐승”으로 볼 수 있다. 뿔은 힘, 권능, 권위를 상징한다. 찌비는 노루, 아름다운, 광채 등의 의미. 즉 권능을 의미한다. 권능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정한 자는 레위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부정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들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피는 죄를 상징한다. 죄인을 대신 하여 동물이 죽어서 흘리는 피는 죄를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피를 흘리신 것은 죄인들을 대속하는 피라는 말이다.
고린도전서 11장 26-29절에서『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잔을 마시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마시는 자는 죄를 마시는 것이므로, 잔을 마시는 자는 예수님의 부활생명을 마시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찬 때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죄를 대속하는 죽음의 피이고, 성도들이 마시는 잔은 부활생명수가 되는 것이다.
댓글
댓글 쓰기